
감각의 주술
The Spell of the Sensuous
: 닿지 않은 채로 이미 닿아 있는 세계에 관하여
인문 / 철학 / 생태
데이비드 에이브럼 지음 | 장상미 옮김
29,000원 | 484쪽
ISBN: 979-11-93482-17-9
2026년 5월 6일 출간
✦ 책 소개
메를로퐁티의 현상학, 발리 샤머니즘, 언어의 풍경, 인간-너머 세계의 신화, 마술사들의 이야기, 하이데거의 시간론…. 철학과 마술을 넘나드는 전례 없는 방식으로 기존의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뒤흔들며 삶을 변화시키는 매혹적인 주술이 펼쳐진다. “상상되기는 했어도 서술된 적은 없는” 획기적인 사상으로 생태 담론과 인간 삶의 철학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데이비드 에이브럼의 대표작 『감각의 주술』은 20년 넘게 사랑받아온 현대 고전이자 필독서다.
‘철학자이자 마술사’라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게 독특한 정체성을 가진 그는 대학 시절 내내 클럽과 식당 등에서 마술 공연을 하며 학비를 벌었고, 유럽을 떠돌며 거리의 마술사로 활동하기도 한 흥미로운 이력을 지녔다. 이후 연구자이자 마술사로서 발리, 네팔 등의 오지 마을을 떠돌며 토착민은 물론 샤먼, 치료사, 예언자 등과 깊이 교류했다. 이때 저자는 그들이 어떻게 살아 있고 생동하는 세계에 참여하고 ‘인간-너머’ 세계의 타자들과 관계를 맺는지 직접 목도했다.
이 책의 진가는 시적이고 유려한 문체로 겉보기에는 무관해 보이는 여러 사상과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기발하게 엮어 근사한 하나의 그림으로 제시하는 순간들에 있다. 현상학을 바탕으로 인간을 세계 밖의 관찰자가 아니라 몸을 통해 세계에 얽혀 있는 존재로 재정의하고, 고대 신화와 토착문화들을 들여다보며 언어가 인간과 세계 사이의 비언어적 교환, 즉 ‘감각’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밝힌다. 나아가 ‘감각’을 통해 다시 세계에 참여할 때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관계가 새롭게 열리며, 이는 환경 윤리와 삶의 방식 자체를 바꾸는 출발점이 된다고 주장한다.
“분류에 저항하고 틀에 박히지 못하는” 『감각의 주술』은 출간 직후부터 막스 욀슐래거, 제임스 힐먼, 린 마굴리스, 게리 스나이더, 크리스토퍼 메인스, 하워드 노먼 등 세계 유수의 학자들에게서 “시적 열정에 지적 엄밀성과 대담함이 결합한 걸작”이라는 극찬을 받았으며, 철학, 환경, 예술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학계와 수업에서 사랑받았다. 또한 존 버거, 리베카 솔닛, 아룬다티 로이 등 세계적 지성들에게 수여된 권위 있는 상인 국제 래넌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 지은이
데이비드 에이브럼 (David Abram)
문화생태학자이자 지구철학자인 데이비드 에이브럼은 거리 위의 마술사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대학 시절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5년 동안 클럽과 식당, 거리에서 마술 공연을 했고, 이를 계기로 마술사로서 발리, 네팔 등 오지를 떠돌며 마을의 치료사, 주술사, 예언자들과 교류하며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몸짓과 감각만으로 관계가 만들어지는 순간들을 직접 체험했다. 이 강렬한 경험은 훗날 그의 사유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 된다.
웨슬리언대학교를 최우등생으로 졸업하고 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브룩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왓슨재단 및 록펠러재단 연구원 지원을 받았으며, 이 책 『감각의 주술』은 래넌문학상 논픽션부문에서 수상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서 “혁명적”이라고, 과학 저널 사이언스에서 “대담하고 진정으로 독창적”이라고 극찬받은 그의 저서들은 감각 지각과 언어가 인간과 생동하는 지구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바꾸는지 탐구해왔다. 그는 자연을 인간을 포함하면서도 넘어서는 살아 있는 영역으로 설명하기 위해 ‘인간-너머 세계(the more-than-human world)’라는 개념을 제안했고, 이 용어는 오늘날 생태사상의 핵심 어휘로 자리 잡았다.
✦ 옮긴이
장상미
시민사회운동을 공부하고 시민단체 활동가로 일하면서 사회운동, 인권, 생태에 관한 책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2012년부터는 자립, 공존, 연대를 주제로 서울에서 〈어쩌면사무소〉라는 다중적 공간을 꾸렸고, 현재는 목포로 옮겨 책방 및 카페로 운영하고 있다. 거주하던 재개발 지역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독립출판물 『지금은 없는 동네』를 제작했고, 〈어쩌면사무소〉의 실험 과정을 담은 책 『어쩌면 이루어질지도 몰라』를 썼다. 옮긴 책으로 『먹고 싸고 죽고』, 『휴식은 저항이다』, 『헬렌 켈러』, 『재난 불평등』 등이 있다.
✦ 추천사
“박식하며, 그가 절벽 끄트머리에서 마주쳤던 콘도르의 눈처럼 언제나 ‘명료하고 정확한’ 에이브럼은 음악가나 위대한 수학자의 정신을 닮은, 몽환과 지성을 융합한 흔치 않은 정신의 소유자이다.”
_『빌리지 보이스(Village Voice)』
“『감각의 주술』은 흔치 않은 탁월함과 이제 한 세대 독자들의 사고를 형성하기에 이른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책이다. 엄밀한 사고, 경이에 대한 열린 태도, 너그러운 정신이 결합한 독보적인 작품이다. 나는 15년 전에 처음 이 주술에 걸렸고, 이후로 이 책은 내 글쓰기와 강의는 물론이고 내가 세계 속의 존재로서 겪는 일상적 경험의 토대가 되어주었다. 인류세의 그림자가 길고 짙어지는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 놀라운 작품에 담긴 희망과 전망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_로버트 맥팔레인,『랜드마크(Landmarks)』, 『옛적의 길(The Old Ways)』 저자
“시적 열정에 지적 엄밀성과 대담함이 결합한 걸작. 기운이 들끓는 이 책은 우리에게 온전한 인간 동물로서 학문적 탐구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준다. 앞으로 오랫동안, 사실상 여러 세대에 걸쳐 풍부하게 연구될 길과 전망을 열어준다.”
_조애너 메이시, 불교 강사 및 활동가,『액티브 호프(Active Hope)』 저자
“『감각의 주술』은 생태학과 철학, 심리학, 역사가 만나는 최첨단에 자리할뿐더러, 문화와 자연, 몸과 마음의 이분법을 마술처럼 전복하면서, 종종 상상되기는 했어도 서술된 적은 거의 없는 유기적 존재와 인간의 가능성의 전망을 연다. 독자들은 이 메시지에 걸린 마술에 주의하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는 이는 지각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상태로 진입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다.”
_막스 욀슐래거,『야생의 관념(The Idea of Wilderness)』 저자
“획기적인 책이다. 학자들은 그 탁월함은 인정하겠지만, 에이브럼이 성취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간과할 수도 있다. 그는 온전한 인간으로서 성장하도록 돕는 최고의 지침서를 써냈다. 책을 다 읽은 뒤 밖으로 나가 만난 세계는 완전히 다른 장소였다.”
_빌 맥키번,『자연의 종말(The End of Nature)』 저자
“지구상의 모든 이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데이비드 에이브럼의 『감각의 주술』이다. 마술사와 시인의 영혼을 지닌 이가 쓴 희귀하고 독창적인 이 책은 순전한 영혼으로 탁월한 성취를 이룬 작품으로서 모든 문장이 급진적이며 급진화한다. 인간의 존재뿐 아니라 인간의 사고를 위해서도 자연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_제이 그리피스,『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Wild: An Elemental Journey)』 저자
“3년 동안 추천사를 쓰지 않기로 한 다짐을 깨야 할 정도로 에이브럼의 『감각의 주술』은 찬사받아 마땅하다. 너무나도 완성도 높게 잘 쓰이고 제대로 고찰된 책이다. 나는 세계 속에서 인간의 자리를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을 전환하는 데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작품을 알지 못한다. 다음 세대가 그에게 감사할 것이다. 지구가 기뻐할 것이다.”
_제임스 힐먼,『나는 무엇을 원하는가(The Soul’s Code)』,『심리학의 재구상(ReVisioning Psychology)』 저자
“에이브럼은 전례 없는 방식으로 모든 자연의 감각성을 드러내고 인간-너머가 우리의 언어와 삶에 미치는 알지 못했던 효력을 밝히며, 21세기를 위한 진정한 철학을 빚어낸다.”
_린 마굴리스, 행성생물학자, 가이아 가설 공동 창시자
“데이비드 에이브럼의 이 책은 언어, 살, 정신, 역사의 경관에 불을 비추며 우리를 다시 세계 속으로 돌려놓는다.”
_게리 스나이더, 시인,『야생의 실천(The Practice of the Wild)』 저자
“데이비드 에이브럼이 책을 쓰고 있다는 소문이 돌자 우리는 대단히 특별하고 강력한 작품이 나오리라 기대했다. 정당한 기대였다. 우리를 일깨우는 능력이 담긴 책이다.”
_아르네 네스, 철학자, 심층생태학 창시자
“인간과 인간-너머 세계의 생태적 심부에 관해 데이비드 에이브럼보다 더 애정과 서정적인 감수성이 담긴 글을 쓰는 이는 아무도 없다.”
_시어도어 로자크,『황무지가 끝나는 곳(Where the Wasteland Ends)』 저자
“한결같은 지성, 폭넓은 학식, 우아한 운문체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탄생한, 지난 10년간 출간된 자연 분야 서적 중 가장 흥미로운 걸작.”
_잭 터너,『테라 노바(Terra Nova)』 저자
“읽어보라, 머리가 확 깨일 것이다.”
_짐 해리슨,『가을의 전설(Legends of the Fall)』 저자
“환경철학이라는 고유의 영역에서 탁월한 이 책은 언어학, 문학, 인류학, 비교종교학은 물론 우리를 둘러싼 살아 있는 풍경에 관한 우리의 관념을 바꿀 운명을 타고 났다. 『감각의 주술』은 아름답게 쓰이고 우아하게 논증된, 대단히 독창적인 작품으로서 한 세대에 한 번 나올 법한 책이다. 카슨의 『침묵의 봄』처럼, 앞으로 오랫동안 환경적 문해력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_크리스토퍼 메인스,『와일드 어스(Wild Earth)』 저자
“데이비드 에이브럼의 언어, 신화, 경관을 향한 열정 어린 지식과 인간의 감각에 관한 명상이 모두 합해져 강렬하고 기억에 남을 독서를 완성한다. 『감각의 주술』은 설교나 교리, 학문적 허세 없이 영혼의 내부적 외부적 지형을 능숙히 안내하여 우리를 현재까지 이끈다. 이는 연구와 탁월한 직관에서 나온 대작, 명료한 사상의 보존소이다. 생태 위기에 처한 이 세기말에 『감각의 주술』은 가장 심오한 기억과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타종음을 울린다. 없어서는 안 될 책!
_하워드 노먼, 민속학자, 소설가,『새를 그리는 사람(The Bird Artist)』 저자
“자연이라는 외부 세계는 이해, 애정, 미학적 감탄의 능력을 모두 동원해 우리의 내부 세계를 깨운다. 바람, 비, 산, 강, 숲, 초원, 그리고 거기에 깃든 모든 존재. 이들은 우리에게 신체적 생존보다 정신적 생존을 위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데이비드 에이브럼의 작품에 담긴 문해력과 이해력을 모두 갖춘 사람은 내가 아는 한 아무도 없다. 이 시대에 가장 널리 읽고 토론해야 할 책 중 하나이다.”
_토머스 베리 신부,『지구의 꿈(The Dream of the Earth)』 저자
✦ 출판사 서평
“아름답게 쓰이고 우아하게 논증된,
대단히 독창적인 작품이자 한 세대에 한 번 나올 법한 걸작”
★★국제 래넌문학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
● 닿지 않은 채로 이미 닿아 있는 세계에 관하여.
마술사와 시인의 영혼을 지닌 생태철학자가
서로를 얽고 지탱하는 감각의 영역으로
우리를 되돌려놓는 지적 역작.
‘철학자이자 마술사’라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게 독특한 정체성을 가진 저자 데이비드 에이브럼은 클로즈업 마술 공연을 하며 생계를 꾸리는 한편 지각심리, 치유예술, 민간의학과 마술의 관계 등을 연구해왔다. 그는 연구 지원금을 받아 발리, 네팔 등을 떠돌며 연구자이자 순회 마술사로서 토착 공동체들의 생활을 참여관찰했다. 그리고 뜻밖에도 주술사들에게서 지구상에 잔존하는 ‘감각’적 기원을 발견한다. 샤먼, 치료사, 예언자인 그들은 집안 개미에게 공물을 바치거나 망자를 화장해 자연물로 ‘변신’하게 하는 등의 의식과 의례를 통해 인간 공동체와 인간-너머 세계를 오갔다. 이처럼 ‘경계에 있는’ 이들과 토착민들에게는, 소위 ‘선진국’이 비물질적이거나 ‘살아 있지 않다’고 간주해온 타자들은 실체가 있고, 감각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의 눈으로 새롭게 바라본 세계는 모든 감각하는 존재가 주위의 풍경 및 사물과 상호 교류하는, 생동하는 세계였다. 그 속에서 모든 감각하는 존재는 여타 유기체들과 서로를 해치지 않을 만큼 섬세하게 양분을 주고받으며 신체적, 감정적 안녕을 유지한다. 저자는 현대의 도처에서 일어나는 파괴적인 재앙과 정서적인 고통이 인간 공동체와 그 공동체가 속한 지구가 이루는 불균형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다시 미국 도심으로 돌아온 저자는 토착민들에게서 배운 ‘세계를 감각하는 법’과 그 순간 느낀 경이감, 몰입감을 금세 잃고 만 스스로를 발견하고 회의감에 빠진다. 이는 기후 재난, 생태 위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환경보호’를 외치다가도 무력감에 빠지거나 편리함을 누리고자 소홀해지는 우리의 모습과도 겹쳐 보인다. 오랜 세월 책과 논문, 다양한 토론 등을 통해 인간 대 자연이라는 위계적 질서를 공고히 해온 인간 중심적 사회에서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인류는 “세계와 직접 몸과 살로 부딪히고 조우하는 질감, 리듬, 맛”을 잊었으며, “인간의 기술 범위에서 벗어난 그 무엇도 뚜렷이 혹은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는 진정 무능력”한 상태에 처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감각’이라는 세계와의 통로를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 감각은 세계가 우리를 건드리는 사건.
인간과 사물, 몸과 세계 사이에서
잃어버린 비언어적 대화를 다시 열어 보이다.
저자는 현상학이라는 매력적인 학문을 경유해 인간과 세계를 분리해서 보는 익숙한 이원론적 사고방식을 뒤집는다. 인간의 마음을 기계처럼 분석하던 당대 심리학에 의문을 품고 현상학을 창시한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은 세상을 관념론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실제로 보고 듣고 느끼는 경험 자체에서 출발해 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생활세계’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생활세계란 “머리 위에는 구름, 발밑에는 땅이 있는, 잠에서 깨어 음식을 준비하고 수도꼭지를 돌려 물을 트는” 일상적인 세계, 의식하고 분석하기 이전에 이미 늘 거기 있는 세계다.
이 개념은 모리스 메를로퐁티에게로 이어져 더욱 흥미롭게 발전한다. 그는 인간이 정신보다는 ‘몸’을 통해 세상과 만나고 타인과 연결되는 존재라고 보았다. 우리가 바람을 느끼고, 누군가의 손을 잡고, 사물의 질감을 알아차리는 모든 순간이 바로 몸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이다. 메를로퐁티는 이를 ‘살(flesh)’이라 불렀는데, 인간과 세계가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하나의 살아 있는 관계망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세상을 만질 수 있다는 사실은, 동시에 세상 역시 우리를 직접 만질 수 있다는 놀라운 진실을 품고 있다.
저자 에이브럼은 어렵기로 소문난 후설과 메를로퐁티의 철학을 세상의 그 어떤 입문서보다 쉽고 아름답게 설명하며, 마술사로서의 자신의 경험과 흥미롭게 엮는다. 그는 마술사의 손에서 동전이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작은 찰나에 관객이 시선으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마술이 완성된다고 설명한다. 그 공연에 자리한 마술사와 관객 모두가 감각을 통해 하나의 현상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서술들을 통해 우리는 세계는 바로 나의 참여로 돌아간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생활세계, 그러니까 우리를 둘러싼 풍경은 멀리 떨어진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고 응답하는 순간마다 새롭게 생성되는, 살아 있는 사건임을 이 책은 매혹적으로 보여준다.
● 언어의 공감각적 마력을 회복하기 위해.
가장 심오한 형태의 애니미즘으로서의 언어.
감각의 단절과 관련해 가장 중점적으로 다뤄지는 것은 ‘언어’다. 본래 초기 문자 체계는 인간-너머의 타자들이 남긴 흔적으로부터 생겨난 그림문자 체계였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인들이 초기 셈어 알레프벳을 수정해 받아들이면서 구술문화와 그림문자의 시대가 서서히 저물고, 표음문자인 알파벳이 주도하는 사회가 도래했다. 알파벳은 이전의 문자가 지녔던 인간-너머 세계와의 공감각적 연결을 상실한 문자였다. 알파벳에 기반한 문자문화가 자리를 잡자 언어는 점차 다른 동물, 식물 등 생동하는 존재들의 목소리를 잃어갔고, 인간의 참여적이고 경험적인 성향은 비물질적이고 추상적인 행위로 축소되었다. 그리고 오직 문자에만 기반한 소위 ‘합리적인’ 지성, 알파벳식 이성만을 떠받들게 되었다. 놀랍게도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알파벳이 인간이 주변을 둘러싼 세계와 단절되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심지어 강대국들의 침략과 식민주의를 통해 알파벳식 이성은 구술문화를 간직해온 토착 공동체들 속으로도 침투해, 이들이 지켜온 대지(풍경) 및 타자와의 연결 고리를 파괴해왔다.
저자는 고대 설화나 신화 및 기록에 담긴 구술문화의 흔적을 탐구하며, 본래 언어란 대단히 신체적인 현상이며 생동하는 풍경의 몸짓과 소리로 이루어진 상호 의존적인 산물임을 밝힌다. 또한 인간만의 전유물도 아니며, 우리의 감각하는 ‘살’과 세계의 ‘살’ 사이에서 진행되고 있는 비언어적 교환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북아메리카 대평원, 호주, 아프리카의 수많은 토착 민족은 자신들이 태어나 자란 대지와의 연결성을 매우 중요시한다. 이들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르침과 지침을 나무, 돌, 바위 등과 같은 타자로부터 구하며, 이를 ‘머나먼시절’ 설화나 ‘꿈속시절’ 신화 같은 이야기로 대대로 구전한다. 그 이야기들 속에서 땅과 타자들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동물이나 식물의 기원은 무엇인지, 살 만한 거주지는 어디인지 알려주거나, 비도덕적인 행위에 대한 교훈을 전해준다. 심지어 사람이 앞으로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감시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러한 토착 민족들의 언어 역시 대지 및 인간-너머 세계의 타자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이들의 세계관에서 동물이나 식물 같은 타자들은 인간의 말을 알아듣고 인간과 소통한다. 이 책은 수많은 토착문화가 공유하는 언어에 대한 근원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인간을 대지와의 깊은 관계 속에 ‘잠겨 있고’, 그 속에서 균형을 잡으며 끊임없이 생성되는 이 세계를 헤쳐나가는, 타자에게 열린 존재로 정의한다.
이 책의 또 다른 흥미로운 논의는, 공간과 시간을 구분하지 않는 문화와 하이데거의 시간론을 연결하는 부분이다. 시간과 공간이 구별된다는 개념은 당연한 것이 아니며, 인간의 감각이 세계와 단절된 이유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 곳곳의 다양한 토착 민족은 설화를 이야기하거나 노래하는 행위 등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해 살아간다. 일반적으로 이들의 설화는 ‘과거’를 가리키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의 주변 풍경(대지)’에 잠재적으로 깃들어 있는 힘이자 세계 자체이며, 따라서 이들에게 시간은 선형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배핀섬의 이누이트의 말 ‘우바티아루’는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지칭한다. 이처럼 세계가 비선형적으로 ‘현전’한다고 보는 저자는 마르틴 하이데거의 사유를 경유해 감각적 풍경 속에 과거와 미래를 위치 짓는다. 하이데거의 초기 걸작 『존재와 시간』, 말년의 논문 「시간과 존재」를 바탕으로 그가 설명하는 과거는 놀랍게도 지면 아래, 미래는 지평 너머에 놓인 힘이다. 즉 우리 인간은 주변을 둘러싼 풍경(지면과 지평)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 우리가 감각을 통해 다시 세계에 ‘참여’할 때
윤리와 정치도 달라질 것이다.
삶의 의미는 당신이 밟고 서 있는
세계에서 솟아난다!
기술 혁신은 세계를 인간만의 안락한 요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인위적 창조물이 범람하는 온통 추상적인 영역에 스스로 갇힌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기후 재난과 생태 위기라는 전 지구적 부작용이다. 인공지능이나 뇌과학에 기대어 모든 문제를 오로지 내부적으로만 해결하려 하는 사이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관계는 빠르게 소실되고 있다.
그렇다면 수많은 타자가 깃들어 사는 생동하는 풍경 앞에서 멀어버린 눈과 귀를 되찾을 방법은 무엇일까?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하다. “우리는 오직 인간 아닌 존재들과 접촉하고 어우러짐으로써만 인간이 된다.”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를 이루고 지탱하는 모든 비인간과 접촉하고 감각하는 것이다.
감각적 관계를 새롭게 되살리기 위한 변화는 우리가 뿌리내리고 있는 구체적인 장소와의 관계 맺기로부터 시작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토착민들이 특정 장소가 지닌 힘과 개성을 존중하고 노래나 이야기로 표현하듯이, 우리도 자신이 거주하는 장소를 감각하고 익히며 그곳에 진정으로 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미 해외에서 많은 공동체와 개인이 ‘재거주’라고도 불리는 이 생태적 수련 행위를 실천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사는 동네의 동식물을 관찰하고 생애주기 및 행동양식을 알아가고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 등을 차근차근 꾸준히 배워간다. 말하자면 땅의 ‘수련생’이 되는 것이다. 이로써 자신이 속한 땅에 어울리는 민감하고 책임감 있는 인간 공동체를 꾸리며 새로운 환경 윤리의 발판을 마련해나가고 있다.
『감각의 주술』을 다른 언어로 가장 먼저 번역한 곳은 농업 식민화의 위기에 놓인 페루 안데스 지역의 소농민 연합이었다. 글을 아는 사람들이 장별로 한 자 한 자 번역해 다른 공동체 멤버들과 공유해 읽어온 것이다. 이후로도 파괴되어가는 행성을 지키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며 널리 읽히게 된 이 책은 생태 담론과 인간 삶의 철학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으며 20년 넘게 꾸준히 사랑받았다. 저자가 20주년판 후기에서 말하듯이, 지금이야말로 야생적인 타자성의 회복이라는 마술이 필요한 때다. 이 책은 주위를 둘러싼 풍경에 대한 감각을 되찾고 삶을 변화시키고 싶은 인류에게 “기운이 들끓는” 마술 같은 순간을 선사할, 이 시대에 가장 널리 읽히고 토론되어야 할 책이다.
“어쩌면 우리는 마치 마술사처럼, 또는 다른 집단 틈에서 살다 보니 더는 원래 속한 곳으로 온전히 돌아갈 수 없게 된 사람처럼 문명의 가장자리에 자리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절반은 자기 공동체의 내부에, 절반은 바깥에 머물며, 도시의 매끈한 거울 벽들 너머에서 날고 기는 변화무쌍한 목소리들과 소란한 형상들에 자신을 열어놓는다.”
_본문에서
✦ 목차
● 서문과 감사의 말
1. 마술의 생태학
2. 생태학으로 가는 길에 관한 철학
– 1부: 에드문트 후설과 현상학
상호 주관성 | 생활세계
– 2부: 모리스 메를로퐁티와 지각의 참여적 본질
몸의 사유하는 삶 | 몸과 사물들의 고요한 대화 | 지각적 세계의 생동성 | 참여로서의 지각 | 공감각: 감각들의 융합 | 감각의 회복은 지구의 재발견이다 | 살로서의 물질 | 만짐과 만져짐: 감각적인 것의 상호성
3. 언어의 살
언어의 생태학을 향하여 | 말의 마술
4. 애니미즘과 알파벳
래퍼의 리듬 | 변하지 않는 이데아의 영원성 | 나무 속의 언어에 관하여 | 공감각 그리고 타자와의 마주침
5. 언어의 풍경에서
새들의 언어 | 이야기되는 대지 | 꿈속시절 | 장소와 기억
6. 시간, 공간, 그리고 지구의 일식
– 1부: 추상화
공간과 시간의 추상화 | 공간과 시간이 구별되지 않는 구술적 우주 | 글 속으로의 추방 | 절대 공간과 절대 시간
– 2부: 살아 있는 현재
대지에 뿌리내린 시간의 위상 | 감각적인 것의 깊은 곳에
7. 공기의 망각과 기억
대평원의 바람과 영 | 나바호인의 공기와 인식 | 바람, 숨결, 말하기 | 글자의 힘 | 공기의 망각 | 막과 장벽 | 기억하기
종결부: 내부를 꺼내어 뒤집기
● 20주년판 지은이의 말
● 주석
● 옮긴이의 말
● 참고문헌
● 이용허락
✦ 책 속에서
인간은 관계 맺기 위해 조율되었다. 눈, 피부, 혀, 귀, 콧구멍, 이 모든 것이 우리 몸이 타자성의 양분을 받아들이는 관문이다. 이 그늘진 목소리들의 풍경, 이 깃털 달린 몸들과 뿔들과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들, 이 숨 쉬는 형체들은 우리의 가족, 우리가 관여된 존재, 우리가 다투고 고통받고 찬양하는 존재들이다. 인류가 존재해온 대부분의 시간 동안 우리는 우연히 시선을 사로잡은 날갯짓 하나하나, 저마다의 질감을 지닌 표면과 진동하는 형상 하나하나와 가능성을 주고받으며 우리를 둘러싼 감각적인 환경의 모든 측면과 관계를 조율해왔다. 피부로 느끼거나 코로 들이마시거나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변화무쌍한 의미 전달망인 몸짓, 휘파람, 한숨을 통해 모든 것이 말할 수 있었고, 우리도 소리로든 움직임으로든 미세한 기분의 변화로든 응답할 수 있었다. 하늘의 색, 파도의 기세—지상에서 경험하는 감각의 모든 측면이 우리를 흥미와 위험이 가미된 관계 속으로 끌어들였다. 소리는 모두 목소리였고, 마찰이나 충돌은 모두 하나의 만남이었다. 천둥과 참나무와 잠자리와의 만남. 이 모든 관계가 우리의 집단적 감성을 키우는 양분이 되어주었다.
-15~16쪽
주술사란 지상의 다른 힘들과 접하고 그들로부터 배우기 위해 자신이 속한 문화를 규정하는 지각적 경계—이는 사회적 관습과 금기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공통 화법과 언어를 통해 강화된다—를 쉽게 벗어나는 능력을 지닌 자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마술은 인간-너머의 장이 보내는, 의미로 가득한 노래, 울음, 몸짓 등의 부름에 대한 고도의 수용력이다. 그렇다면 아마 가장 원초적인 의미에서 마술은, 다중 지성으로 구성된 세계에 존재한다는 경험일 것이다. 즉 우리가 지각하는 모든 형상—머리 위를 스치는 제비나 풀잎에 앉은 파리, 그 풀잎 자체에 이르기까지—이 스스로 경험하는 하나의 형상, 비록 우리의 것과는 다르지만 각각 고유한 성향과 감각을 지닌 실체라는 직관이다.
-34쪽
발리언 부부가 집안의 영들을 달래려고 그렇게 정성 들여 공물을 바쳤는데, 그걸 다리 여섯 개 달린 조그만 도둑들이 홀랑 훔쳐가고 있다니. 완전 헛수고잖아! 그런데 문득 희한한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바로 그 개미들이 공물을 바치는 대상인 ‘집안의 영들’이라면?
-38~39쪽
내 연구 방향을 전환하게 한 인도네시아와 네팔 농촌에서의 경험을 통해 비인간적 자연을 서양에서의 일반적인 견해보다 훨씬 더 강렬하고 미묘하게 지각하고 경험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인간 너머의 실재에 대한 고도의 감수성, 즉 이러한 많은 문화에서 드러나는, 다른 종들과 대지에 대한 주의 깊은 관심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또 무엇이 내 인식을 크게 변화시켜 스스로가 속한 문화의 양태에 짓눌리고 결핍된 듯한 느낌을 받게 만들었을까? 아니, 거꾸로, 왜 현대 서양에서는 이러한 배려심이 부재하게 되었을까? 서양 문화도 토착적인 기원을 지녔는데 말이다. 만약 토착문화에서 나타나는 자연과의 긴밀한 연결이 좀 더 원초적이고 참여적인 지각 방식과 관련 있다면, 어떻게 서양 문명은 그런 감각적 상호성에서 이토록 멀어졌을까? 그러니까, 우리는 어떻게 다른 종들의 존재에, 그들이 깃들어 사는 생동하는 풍경에 대해 이토록 눈멀고 귀 먼 상태가 되어 이제는 무심히 그들을 파괴하게 되었을까?
-60~61쪽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마치 마술사처럼, 또는 다른 부족 틈에서 살다 보니 더는 원래 속한 곳으로 온전히 돌아갈 수 없게 된 사람처럼 문명의 가장자리에 자리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절반은 자기 공동체의 내부에, 절반은 바깥에 머물며, 도시의 매끈한 거울 벽들 너머에서 날고 기는 변화무쌍한 목소리들과 소란한 형상들에 자신을 열어놓는다. 더 나아가 거기서 벽들을 따라 움직이면서 이것이 어떻게 세워졌으며 이 단순한 가림막이 어쩌다 장벽이 되었는지, 그 수수께끼를 풀 확실한 단서를 찾으리라 희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시기가 잘 맞을 때만. 그가 자주 머무는 그 변두리가 공간적으로만이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가장자리이며, 그것이 경계 짓는 시간적 구조가 막 해체되려 하거나 또 다른 무엇으로 변신하려는 찰나에만.
-62쪽
메를로퐁티의 연구에서 지각은 바로 이와 같은 상호성, 내 몸과 이것을 둘러싼 존재들 사이에서 계속 이어지는 교류다. 내가 사물들과 이어가는 일종의 고요한 대화, 나의 언어적 인식의 저 아래에서 펼쳐지는 끊임없는 대화다. 심지어 나의 언어적 인식과는 펼쳐지는 경우도 많다. 따로 의식하지 않아도 손이 이 원고들과 탁자 저편의 커피잔 사이의 공간을 쉽게 오갈 때라든지, 집 뒤편의 산비탈을 오르는 동안 언어적 의식이 이런저런 경사 변화에 맞춰 걷는 방식을 조정하라고 지시하지 않아도 두 다리가 알아서 대응할 때처럼 말이다.
-96쪽
예를 들어 내가 오른손으로 은화를 몇 차례 휘두르며 주의를 끌다가 갑자기 손 뒤로 옮겨 두 손가락 사이에 동전을 끼워 숨겼다고 해보자. 그러면 관객들의 눈에는 더 이상 동전이 보이지 않는다. 곧바로 내가 왼손을 허공으로 뻗어 그 손에 미리 숨겨두었던 또 다른 은화를 보여주면 관객들은 무척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고 여길 것이다. 한 손에서 동전이 잠시 숨겨진 사이에 다른 손에 숨겨놓았던 동전이 나타났다는 것이 가장 명백하고 합리적인 해석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의 동전이 오른손에서 사라졌다가 보이지 않게 허공을 가로질러 왼손에서 다시 나타났다고 볼 것이다! 지각하는 몸은 논리적 가능성을 따지지 않고, 사물을 더 온전히 보기 위해 상상력을 발휘하며 세계의 활동에 사교적으로 참여한다. 동전의 보이지 않는 여정은 감각들의 자유분방한 창조성에 의해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마술사는 우리가 직접 물체의 변신을 돕도록 유도한 다음, 우리 스스로 창조해낸 것에 깜짝 놀라게 만드는 것이다!
-103쪽
나무의 거친 표면을 만지는 것은 동시에 자신의 촉각성을 경험하는 것, 나무에게 만져지는 자신을 느끼는 것이다. 세계를 보는 것 또한 가시적인 자신을 경험하는 것, 보이는 자신을 느끼는 것이다. 완전히 비물질적인 정신이 사물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건 분명하다. 사실 그 무엇도 경험할 수 없다. 오로지 우리가 몸으로서 감각 가능한 장 안에 속해 고유의 질감, 소리, 맛을 지녔기 때문에 사물을 경험하는 것이, 즉 만지고, 듣고, 맛보는 것이 가능하다. 사물을 지각할 수 있는 까닭은 우리가 전적으로 자신이 지각하는 바로 그 감각 가능한 세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세계의 장기이며, 그 살의 일부이고, 세계는 우리를 통해 스스로를 지각하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117쪽
<거머리남자가 이쪽저쪽을 살피며 다가왔다. 그는 좋은 자리를 발견했다. “나는 여기서 이것을 하겠다. 좋은 자리니까. 여기에 자리 잡고 영원히 머물겠다.” 물고기를 먹고 있던 나베르그-가이드미가 “넌 무엇이냐?”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거머리가 되는 중이고, 한 자리에 머물 것이다. 나는 바위가, 작은 바위가 될 것이며, 납작한 머리, 낮은 머리를 갖고 여기에 머물 것이다. 나는 거머리 드장, 거머리꿈꾸기다!” 그는 “나는 거머리다!”라고 말했고, 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여기에 앉는다. 흐르는 이 개울은 내 것, 내가 머무는 곳이다. 나는 드장이다. 꿈꾸기다!”>
이처럼 각 조상은 깨어 있는 동안 여기저기 여행하다가 그 과정에서 특정한 사건과 마주침을 겪고 장소나 지각할 수 있는 지형적 특징을 구불구불 남긴다. 이 여정은 조상이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의 일면으로 완전히 변신해 “다시 안으로 들어가는” 장소에서 막을 내린다.
-257쪽
서양의 성서에서 말하는 창세 신화와 달리, 꿈꾸기는 완결된 사건이 아니다. 과학적으로 해석한 ‘빅뱅’처럼 머나먼 과거에 단 한 차례 발생한 사건도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지속되는 과정이다. 세계가 막 태어난 미결정적인 상태에서 충만하고 깨어 있는 실재로, 비가시성에서 가시성으로, 비밀스러운 침묵의 심부에서 또렷한 노래와 말로 끊임없이 드러나는 과정이다. 호주 토착민들이 이 우주적인 개념의 영어 번역어로 ‘꿈꾸기’를 선택했다는 사실에서, 꿈을 꾸는 일상 행위가 씨족 조상들의 시간에 직접 참여하는 행위이며, 따라서 그 시간은 완전히 다른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며, 지각 가능한 현재로부터 완전히 차단되어 있는 것도 아니라는 인식이 드러난다. 오히려, 우리의 꿈속 삶이 우리의 의식적이고 깨어 있는 경험과의 관계 속에 자리하고 있듯이, 꿈꾸기도 우리를 둘러싼 대지의 열린 현존과의 똑같은 관계 속에 자리한다. 이는 모호하면서 계속 변화하는 깊은 차원의 일종이다.
-262~263쪽
하지만 알파벳 체계는 추상적이고 균질적인 ‘공간’만이 아니라 추상적이고 선형적인 ‘시간’이 부상하는 데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토착적 구술문화에서 우리가 ‘시간’이라고 부르는 끊이지 않는 흐름은 지극히 순환적인 성격을 지닌다. 구술문화 민족의 감각은 여전히 그들을 둘러싼 땅에 맞춰져 있으며, 여전히 바람과 숲속 새들이 들려주는 표현력 넘치는 발화에 익숙하며, 여전히 감각적인 우주에 참여한다. 이러한 세계에서 시간은 순환하는 해와 달의 생애, 계절의 반복, 동물의 죽음과 재탄생, 즉 푸르게 되살아나는 대지의 영원회귀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284쪽
이 흥미로운 서술에 주의를 기울이는 순간, 하이데거가 묘사한 시간의 개념 구조와 우리를 둘러싼 풍경의 지각적 구조 사이에 명백한 상응 관계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바로 지평이다! 하이데거는 “지평”이라는 용어를 구조적인 은유로 사용해 시간의 탈자적인 본질을 표현한다. 시간의 힘이 지각 가능한 현재를 언제나 열려 있는 상태로, 언제나 이미 자신을 넘어 펼쳐지게 하듯이, 멀리 있는 지평도 지각 가능한 풍경을 열어두며, 바로 이 풍경을 언제나 그 너머에 있는 것과 이어지게 한다.
-320~321쪽
우리가 면 대 면으로—그리고 면 대 공간으로—마주하는, 온전히 신체적인 세계에 우선적 가치를 부여할 때야말로 수많은 세계가 주의를 끌어가려 하는 지금 이 상황을 현명하게 잘 헤쳐나갈 기회를 얻는다. 현지의 땅에 온전히 자신을 열어 내맡겨야—디지털 노예 상태에서 빠져나오도록 코드를 뽑고, 밖으로 나가 밤의 강에서 피어오르는 향취를 맡고, 이 땅의(이곳에 서식하는 존재들과 그들의 고독이 만들어내는) 여러 음색이 우리의 유기체를 조율하도록 허용할 때—비로소 우리의 감각을 되찾아 모든 기술의 가치 있는 활용과 오용을 헤아릴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오직 인간 아닌 존재들과 접촉하고 어우러짐으로써만 인간이 되기 때문이다.
-431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