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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와 억압의 집, 여성병원의 탄생 표지


치유와 억압의 집, 여성병원의 탄생
Medical Bondage (2017년)
: 왜 여성들은 산부인과가 불편한가?


사회과학 > 여성학
디어드러 쿠퍼 오언스 지음 | 이영래 옮김 | 윤정원 감수
16,500원 | 312쪽
ISBN: 979-11-87038-68-9
2021년 3월 23일 출간


[서점 링크] 교보문고 | 예스24 | 알라딘



✦ 책 소개

여성을 ‘위한’ 병원은 왜 여성을 불편하게 만드는가?
여성의 몸과 의학, 사회가 맺을 새로운 관계를 위해 넘어서야 할 유산
미국 남부 노예 오두막에서 시작된 현대 산부인과의 기원과 역사!


산부인과는 여성을 ‘위한’ 병원인데, 왜 여성들은 왜 산부인과에 가는 일이 불편할까? 산부인과 검진에서 지금까지도 흔히 쓰이는 검진 도구에는 왜 미국인 백인 남성 외과 의사 이름이 붙어 있을까? 여성건강은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 과학과 의학의 영역이 되었을까? 진정 여성을 ‘위한’ 여성의학을 위해 필요한 상상력은 무얼까? 『치유와 억압의 집, 여성병원의 탄생』은 현대 여성의학의 기원을 살피며 이런 질문에 답한다. ‘산부인과의 아버지’로 불려 온 백인 남성 외과의들은 흑인 여성과 가난한 아일랜드 이주민 여성의 몸을 백인 ‘숙녀들’보다 고통을 잘 견디는, ‘의학적 초신체’로 평가하고, 그를 기반으로 현대 부인과학을 발전시켜 왔다. 흑인 여성이자 의료인문학자인 저자는 그 역사를 추적하고, 인종, 계급, 젠더라는 경계들을 더듬어 여성의학 발전사에서 지워졌던 여성들의 존재를 능동적인 역사적 주체로 다시 조명하고 복원한다. 그로써 낙태죄 폐지 이후 여성의 몸과 사회, 그리고 의학이 맺을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2021년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과 답을 제안한다.



✦ 추천의 글

이 책은 인종학과 성차별적 고정관념, 미국 산부인과학의 기원이 서로를 어떻게 강화하고 교차하며 발전해 왔는지를 생생한 사례들과 방대한 고증을 통해 우리 눈앞에 그려 낸다. 저자가 무엇보다 강조하고자 한 것은 폭력과 착취가 꺾을 수 없었던 이 여성들의 모성과 생명력, 연대와 전통이었다. 우리는 선조 여성들의 피와 눈물이 스민 과학 발전의 산물을 어떻게 민주적이고 여성주의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를 더 고민해야 한다. 치료라는 대의가 수단을 정당화해 온 것은 아닌지, 여성을 ‘위한다’는 선의에 압도당해 여성의 삶이 아니라 질병만 보게 되는 것이 아닌지. 이제는 의료인도 여성도 함께, 그리고 다시 질문해야 할 때이다.

_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 『다른 의료는 가능하다』 저자



✦ 지은이

디어드러 쿠퍼 오언스 (Deirdre Cooper Owens)

의학, 노예제, 여성의 역사를 연구하는 의학사학자로 현재 네브래스카링컨대학 역사학과에서 의학사를 가르치며 의료인문학 프로그램을 주관하고 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글과 강연으로 발표하고 있으며 대중과 학계에서 두루 지지를 얻고 있다. 첫 책인 『치유와 억압의 집, 여성병원의 탄생』은 2018년 미국사연구자협회(Organization of American Historians)가 꼽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과 젠더의 역사를 다룬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현재는 미국 노예제 시기 정신 질환에 대한 글과 노예해방운동을 주도한 인권운동가 해리엇 터브먼의 생애를 장애라는 렌즈로 들여다본 전기를 집필하고 있다.



✦ 옮긴이

이영래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리츠칼튼 서울에서 리셉셔니스트로, 이수그룹 비서팀에서 비서로 근무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왜 아플까』, 『플랜트 패러독스』, 『당신의 의사도 모르는 11가지 약의 비밀』, 『넥스트 아프리카』, 『코드 경제학』, 『알리바바』, 『고독한 나에게』, 『부의 심리학』, 『씽크 어게인』 등이 있다.



✦ 감수

윤정원

연세대학교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산부인과 전문의를 수료했다.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 전문의이며,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 ‘셰어(SHARE)’ 기획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 진료와 성 소수자 진료, 낙태죄 폐지 등 여성주의 의료와 여성 건강권에 대한 목소리를 꾸준히 냈으며, 2018 양성평등주간 여성가족부장관상을 수상했다. 함께 지은 책으로는 『소녀×몸 교과서』, 『우리가 만드는 피임사전』, 『배틀그라운드』, 『불편할 준비』, 『다른 의료는 가능하다』 등이 있다.



✦ 출판사 서평

여성을 ‘위한’ 병원은 왜 여성을 불편하게 만드는가?
여성의 몸과 의학, 사회의 새로운 관계를 위해 넘어서야 할 유산은 무엇인가?


산부인과는 여성을 ‘위한’ 병원인데도 왜 여성들은 왜 산부인과에 가는 일이 불편할까? 산부인과 검진에서 지금까지도 흔히 쓰이는 검진 도구에는 왜 미국인 백인 남성 외과 의사 이름이 붙어 있을까? 여성건강은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 과학과 의학의 영역이 되었을까? 진정 여성을 ‘위한’ 여성의학을 위해 필요한 상상력은 무얼까? 『치유와 억압의 집, 여성병원의 탄생』은 현대 여성의학의 기원을 살피며 이런 질문에 답한다.

이 책은 ‘산부인과의 아버지’로 불려 온 외과의들이 여성병원을 세우고 여성의학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유색인’ 여성들을 백인 “숙녀”들보다 고통을 잘 견디고 성욕이 과도한, 예외적인 존재로 평가하고 이런 잘못된 환상을 어떻게 과학으로 둔갑시켜 전파했는지를 살핀다. 1장 미국 부인과 의학의 탄생에서는 여성건강이 부인과 의학이라는 공식적 분과로 자리 잡기까지 노예제와 노예 여성의 역할을 조명하고, 이 시기 인종적 편견들과 의학이 어떻게 맞물려 성장했는지를 다룬다. 2장에서는 나이 든 여성 노예의 역할이었던 여성건강 관리와 산파 일이 백인 남성들의 영역으로 편입되는 동안 흑인 여성들이 어떤 방식으로 위치를 찾아 갔는지를 탐구한다. 3장에서는 노예제와 부인과 의학이란 틀 안에서 ‘여성성’이 다뤄진 방식을 규명한다. 4장에서는 대기근 이후 미국 북부로 이주해 온 가난한 아일랜드 여성 이민자들의 사회경제적 상황과 의료 경험을 들여다보고, 흑인 여성의 경험과 비교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19세기 당시의 ‘흑인성’과 ‘여성성’이라는 관념을 파헤치고, 인종, 성별, 계급과 같은 범주가 얼마나 유동적으로 활용되었는지를 밝힌다.

이 책이 드러내는 주요한 문제는 산부인과라는 의학 분과가 만들어진 당시 사회에 내재한 모순과 억압, 폭력들이 어떻게 가치중립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또 그래야만 하는 의학 분과 내에 차별과 편견을 깊이 심게 되는가이다. 여성의학이 만들어진 배경이 노예제와 인종차별의 시대라는 사실은 오늘날 여성들이 겪는 불편함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나아가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된 후, 많은 독자가 “슬프게도, 바뀐 것이 많지 않다”는 서평들을 남긴 것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동력이자 자산이 될 인구를 문제없이 생산하게 하고, 그 생산을 위한 몸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데 쓰인 노예제 시기 여성의학은, 여전히 오늘날 사회가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시각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직업이나 경제적 상황, 성에 대한 편견으로 인한 ‘도덕적’ 평가, 결혼과 출산 여부 등에 따라 치료와 처치에서 여성이 받는 차별 역시 오늘날까지 끊이지 않는다. 이 책이 다루는 이야기와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시공간적 거리는 우리에게 드리운 이런 그림자들을 더 선명하게 하고, 오늘날 여성의 몸과 사회, 의학을 낯설고 새롭게 바라보게 할 것이다.



여성건강은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의학’이 되었는가?
미국 남부 노예 오두막에서 시작된 현대 산부인과의 기원과 역사!


‘부인과 의학의 아버지’이자 1855년 뉴욕에 공식적인 미국 최초의 여성병원을 설립한 매리언 심즈는 그보다 10년 앞서 앨라배마에 비공식적인 미국 최초의 여성병원을 설립했다. 단, 이 병원은 흑인 여성 노예들만을 위한 병원이었다. 이곳에서 이루어진 도전적인 실험과 혁신적인 수술로 인해 여성 생식기에 관한 수많은 의학 저널 논문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부인과를 포함한 미국의 의료 기술은 변방을 벗어나 세계적 중심에 위치하게 됐다. 지금까지도 널리 쓰이는 도구인 “심스질경”을 만들고, 이런 성장의 주역이 됐던 심스는 유럽으로 초청을 받아 부인과 시술을 할 정도로 국내외적인 명성이 높아졌다.

19세기 당시 미국인들에게는 성공률이 높지 않은 외과적 치료 자체가 낯선 경험이었다. 심스의 아버지가 의사가 되겠다는 아들에게 그 직업으로는 어떤 명예도 성취할 수 없다며 화를 냈던 일화에서 보이듯 당시 미국에서 의사라는 직업과 의학계는 신뢰를 받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더군다나 당시 미국인들의 사고 안에서 여성이란 유약하고 신경과민인 하위 집단일 뿐이었고 그런 이들의 생식건강을 다루는 일은 백인 남성 외과의에게 마땅한 일이 아니었다. 그중에도 노예 신분인 흑인 여성들의 생식기를 치료하는 일은 고귀한 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기에 심스를 비롯한 ‘부인과의 아버지’들이 있기 이전에 미국 여성의 생식건강과 출산은 나이 든 흑인 노예 여성의 소관이었다. 하지만 노예주이기도 했던 백인 외과의들은 노예라는 자산의 증식, 평가와 거래에서 중요했던 여성의학의 가능성을 알아봤다.

당시 의학계 안에서 부인과가 공식적인 의학 분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실험을 발표하는 것 만한 방법이 없었다. 유럽의 ‘과학적 인종차별주의’ 영향 아래서 의학수련을 받았던 이 외과의들은 생식력이 강하고 고통에 무감하다고 알려진 흑인 여성의 몸을 통해 실험적 부인과 실험을 수행했고, 왕성하게 발표했다. 노예들을 위해 지어진 최초의 여성병원 ‘환자의집’은 실험체와 수술 간호사 등의 노동력을 끊임없이 공급하는 장이 되었다. 미국 남부 외과의들은 이 ‘환자의집’들을 경유해 방광질루 치료, 제왕절개 출산, 난소절제술 등 혁신적인 부인과 수술들을 성공시키게 된다. 이렇게 미국 남부 백인 외과의들의 계속되는 실험과 논문 발표는 여성의학을 공식적인 의학 분과로 자리 잡게 했고, 그 과정에서 흑인 여성에 대한 인종적, 성적 편견을 점점 더 강화하며 노예제, 의학, 자본주의의 결속을 더욱 단단하게 했다.



‘탄압받는 자들’ 모두를 위한 치유의 공간은 어떻게 가능한가?
노예제, 인종차별, 성차별이란 폭력에 맞서 서로를 치유하고 저항한,
현대 여성의학 발전사에서 지워진 여성들을 조명하다


여성의학이란 장 안에서 여성과 여성의 몸은 복잡한 층위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가난한 아일랜드 이주민 여성의 의료 경험은 이런 복잡한 층위를 잘 보여 준다. 대기근으로 인해 도미한 아일랜드 여성들은 대체로 나이가 많고, 비혼이며, 가난했다. 이들은 피부색과 무관하게 흑인 여성과 마찬가지로 고통에 무감하고, 과다성욕이며, 튼튼한 생식기관을 가진 존재로 인식됐다. 다만 자산 증식에 기여한다는 이유로 환영받던 흑인 여성의 출산과 달리 아일랜드인 여성들의 출산은 환영받지 못했다. 자유민이었지만 사회경제적 여건으로 인해 직업 선택의 폭이 좁았던 이 여성들은 육체노동과 성 노동에 주로 종사했고, 이들은 ‘자제력 없이’ 아이만 많이 낳는 사회의 짐 취급을 받았다. 이들은 가톨릭교회의 지원으로 점차 ‘보호받는’ 백인 여성의 범주에 포괄되지만 ‘여성이라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음핵절제를 받는 백인 여성들 역시 억압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

하지만 백인 가부장주의에 입각한 여성의학 안에서도 백인/남성/노예주/치유자와 유색인/여성/노예/환자라는 이분법적 관계로 설명되지 않는 다양한 관계들이 존재했다. 특히 여성병원 안에서 수동적인 환자이자 실험체였던 여성들은 치료와 수술에서 회복되기도 전에 다른 여성들을 능동적으로 치유하고 돌보는 수술 보조원이자 간호사로 교육받고 능숙하게 그 일을 행했다. 열다섯 살 때부터 노예 산파이자 간호사로 일했던 레나 클라크는 탁월한 실력으로 노예 여성뿐 아니라 백인 여성들까지 치료했으며, 자기 일에 큰 자부심을 표현했다. 노예였던 밀드레드 그레이브스는 백인 남성 산과의들의 조소와 경멸에도 굴하지 않고, 노예 생활에서 벗어난 뒤까지 백인과 유색인 여성-환자들의 신뢰를 받으며 숙련된 간호사이자 산파로 일했다.

여성의학의 역사는 의학과 같이 가치중립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분야에 인종, 계급, 성별과 같은 정체성과 그와 연관된 고정관념, 관행 들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 주는 증거가 된다. 병을 설명하고 다루는 일은 사회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큰 중요성을 가지며, 의학이 가치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권위 있는 사람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마땅한 말이다. 하지만 최초의 여성병원만큼이나 오늘날 여성들이 건강을 위해 찾는 공간들은 가치중립적인 공간과는 거리가 있다. 과거로부터 이어진 여성건강에 대한 인식과 태도는 여성들이 여전히 여성병원을 치유의 공간인 동시의 억압의 공간으로 만든다.

하지만 이 책에서 먼 과거의 이야기를 소환하는 뜻은 때로는 보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럽고 차별적인 역사 속에 빚어진 현대 여성의학을 부정하는 데 있지 않다. 저자는 한 세기도 더 지난 과거의 유산이 오늘날 여성들의 삶에서도 아직 지워지지 않고 있음을 직시하고, 그 유산을 변화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했다. 그런 변화를 위한 상상력을 저자는 지금까지 역사 속에 의도적으로 지워지거나 잊혔던 여성들에게서 찾았다. 그리고 그 발견을 통해 저자는 현대 여성의학을 가능하게 한 것이 그저 노예제, 인종차별, 성차별과 같은 폭력만이 아니며 그 같은 폭력적인 환경 속에서 서로를 치유하고 함께 저항했던 여성들의 힘과 회복력, 자기 생과 몸에 대한 애정과 긍지임을 확인했다. 또한 저자는 다양한 여성의 의료 경험을 통해 ‘다름’이 얼마나 임의적이고 유동적으로 정의되며, 그 정의가 또 얼마나 간단하게 폭력의 동력이 되는지를 보여 준다. 환자인 동시에 치유자, “노동하는 여성”이자 보호가 필요한 ‘숙녀’로 지칭되는 이 여성들의 정체성은 이들이 피해자나 저항자로만 함축할 수 없는 복잡한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 목차

들어가며: 미국 부인과 의학과 흑인의 삶


1장 미국 부인과 의학의 탄생

2장 노예제와 의학에서 흑인 여성의 경험

3장 상충적 관계—노예제, 성, 의학

4장 아일랜드 여성 이민자와 부인과 의학

5장 “의학적 초신체”의 역사와 의학적 시선


나가며

감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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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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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에서

미국 최초의 여성병원은 앨라배마주 마운트 메이그스의 작은 노예 농장에 자리했다. 1844년부터 1849년까지 애너카, 벳시, 루시 외에 신원 미상인 여성 노예 약 9명이 이 병원에서 함께 일하며 살았다. (…) 심스의 농장에서 살았던 5년 동안 이 여성 노예들은 그가 새로운 의학 분야를 탄생시키는 데 큰 몫을 했다. 산과 누공 치료에 대해서라면 이 여성들이 1840년대 중반에서 후반까지 대부분 미국 의사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 이 여성들의 기여가 인식되지 못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이 책은 의사와 상관없이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들어와 입원 기간에도 일을 해야 했던 이들의 알려지지 않은 노고, 건강한 재생산을 위해 붐비는 병원에 기꺼이 들어선 가난한 여성 이민자들의 노동을 들여다볼 것이다.

_「들어가며: 미국 부인과 의학과 흑인들의 삶」, 7~10쪽


19세기 초중반의 부인과 의사들은 일부 학자의 주장처럼 흑인 여성의 신체를 난도질하기를 즐긴, 특별히 잔인하거나 가학적인 의사가 아니다. 그들은 과학적 인종차별주의가 번성하던 시대에 살았던 엘리트 백인 남성이었을 뿐이다. 당시에는 흑인의 지능에 대한 기본적 전제처럼, 흑인의 열등함에 대한 생각들이 굳게 확립되어 있었고 널리 받아들여졌다. 흑인 여성, 노예 여성은 그들 몸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의사들에게 이용당할 수밖에 없는 취약한 집단이었다. 더구나 흑인 여성의 재생산 노동이 큰 가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노동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고장이 났다”고 보이는 흑인 여성 노예를 “고쳐야”했다.

_「들어가며: 미국 부인과 의학과 흑인들의 삶」, 86~87쪽


건강한 흑인 노예를 낳는 것은 산모, 농장 의사, 노예주를 비롯한 노예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게 보람 있는 일이었다. 이 행위자들 각각은 다양한 이유에서 노예 아이의 출생에 투자를 했다. 흑인 아이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투자는 이들이 임신부가 채찍을 맞는 동안에도 자궁 속의 아이들을 어떻게보호했는지 설명하는 노예들의 이야기에 상세히 담겨 있다. (…) 임신한 노예 여성이 피고였던 살인 공판에서는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형 집행이 중단되기도 했다. 노예 출생이 우선시된 것은 미국 노예제보다 수백 년 앞선 유럽의 종교적, 가부장적 개념과 물적 재산권 개념이 합쳐진 결과였다. 임신한 노예 여성들은 엄마와 아이를 별개의 독립체로 취급하던 관행을 만들어 유지하던 사회에서 살았다. 그 결과, 어머니의 진짜 가치는 생식건강과 재생산 노동에 있었으며, 이는 생식의학이 이 시대에 왜 그토록 중요했는지 설명해 준다.

_「노예제와 의학에서 흑인 여성의 경험」, 92~94쪽


노예 여성에 대한 실험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지만 거의 모든 경우 치료적 실험이었다. 그 목표가 재생산의 성공을 강화하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노예를 대상으로 연구를 하는 의사 대부분의 목표는 노예주의 경제적 이익을(높이지는 않더라도) 보호하고, 의사로서 기술을 다듬는 데 있었다. 부인과 의학의 성장은 생식건강 측면에서 흑인 여성의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해 주었으며 노예제의 영속화에도 기여했다. 노예제, 의학, 자본주의는 이처럼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다.

_「노예제와 의학에서 흑인 여성의 경험」, 103쪽


노예주가 흑인 여성의 신체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노예 여성들은 노예주가 그들의 “영혼”에 대한 소유권까지 주장하는 데 저항했다. 그들은 오랫동안 지속된 민간의 지혜를 이용해 노예 공동체의 구성원을 치료했다. 그린의 할머니는 농장에서 “모든 어린아이”를 치료하는 농장 간호사로 37년 동안 일했다. (…)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은 그린의 할머니였지만 그 지식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의사이기도 한 그의 백인 주인이었다. 주인은 이 소유를 자기가 가진 의학적 “비밀”로써 자랑스러워했고 그 소유물에게 육체적인형벌을 가해 자신에게 “몸과 영혼”을 모두 바치도록 했다. 하지만 그린의 할머니는 주인의 뜻을 어기고 자신이 갖고 있는 의학과 약초에 대한 지식을 손자에게 알려 주었다. 그린은 조상에게서 이어받은 이런 반항의 마지막 조치로 산업진흥국 면담자에게 할머니의 “실무적 치료법”을 공개했다.

_「노예제와 의학에서 흑인 여성의 경험」, 107~108쪽


노예제와 남북전쟁 이전 의학 교육에서 흑인 여성의 신체에 대한 표현과 글은 흑인에게 수치심을 주는 데 쓰였다. 더구나 이런 글에서는 백인 여성을 비정상인 성별이기는 하나 순결하고 고결한 존재로 표현하고 흑인 여성을 그와 정반대인 존재로 그렸다. 노예주와 의사 들이 흑인 노예 여성의 신체에 대해 글을 쓴 것은 흑인들의 회복탄력성에 대한 젠더화된 개념을 반영할 뿐 아니라 노예제의 상품화를 돕기 위한 것이었다. 노예 여성의 해부학적 구조는 주인이 그를 팔아서 재산을 늘릴 수 있는지, 혹은 그를 통해 의사의 좋은 평판을 그대로 유지시킬 수 있을지를 좌우했고, 노예 여성의 생식력은 생식기관의 모양을 통해 가정되었다.

_「상충적 관계―노예제, 성, 의학, 174~175쪽


아일랜드 여성 이민자들은 이전에 미국에 들어온 유럽 여성 이민자들보다 나이가 많았고 독신인 경우가 많았다. 또한 그들은 전반적으로 더 가난했다. (…) 이미 “음탕”하고 “성욕과다”라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시선을 감당하고 있던 가난한 아일랜드 태생 여성들은 자제력이 없다는 지배적인 신조까지 견뎌야 했다. 인구 비례로 볼 때 지나치게 많은 가난한 아일랜드 여성 이민자가 성 판매를 직업으로 삼았고 따라서 그들 대다수는 비혼모가 되었다. 노예 여성들과 달리 아일랜드 여성들은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가치”가 높아지지 않았다. 《뉴욕 인디펜던트(New York Independent)》의 한 기자는 “아이가 재산이 된다면 아일랜드인들은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라며 비꼬았다.

_「아일랜드 여성 이민자와 부인과 의학」, 194~195쪽


1860년대 초, 흑인성과 백인성에 대한 정치적 정의가 보다 확고해지면서 토박이 백인들은 백인에게 주어지는 몇 가지 특전을 아일랜드 여성에게 천천히 확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초기 부인과 의사들은 여전히 아일랜드인들의 몸에 대해 그들이 백인보다 “유색”에 가까운 것처럼 표현하곤 했다. 미국인들이 민족주의를 구축하는 동안, 의학과 의학 저술은 인종이 구체화되는 장소 역할을 했다.

_「아일랜드 여성 이민자와 부인과 의학」, 212쪽


누공 실험 환자를 대상으로 시술하는 심스를 그린 삽화는 인종, 존중, 부인과에 대한 많은 것을 드러내 준다. 심스는 노예 여성을 대상으로 연구를 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았지만, 그가 한 선구적 연구에 관해 발표한 삽화에는 백인 여성 간호사와 옷을 갖춰 입고 신까지 신은 백인 여성 환자가 그려져 있다. 실험이 끝나고 몇 년 후에 그 역사적 순간을 담아 둘 의도로 그려진 이 삽화는 앨라배마 노예들이 실험 대상과 간호사로 사용된 사실을 은폐한다.

_「“의학적 초신체”의 역사와 의학적 시선」, 224쪽


19세기는 미국 의학계 의사들이 “여성 동물”의 특성을 길들이고 치료하기 위해 이들의 비밀을 찾는 데 열중한 시기였다. 남북전쟁 이전 시대의 의학적 관행은 여성이 “보다 섬세하고”, “보다 과민한” 신경계 때문에 더 허약한 성별이라고 선언했다. 1868년 일부 부인과 의사들은 신경과민이나 “신경쇠약”인 엘리트 백인 여성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인간의 신경을 약화시킨다고 알려진 이 증상을 음핵절제로 치료했다. 이 수술은 신경과 자궁이 여성의 행동을 지배한다는 소름끼치는 믿음을 드러내 보인다. 백인 남성 의사들은 이미 생물학적으로 허약하다는 개념이 주는 부담에 짓눌려 있던 백인 상류층 여성들에 대해서 그들의 민감한 성정을 악화시킬 수 있는 모든 질환을 치료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_「“의학적 초신체”의 역사와 의학적 시선」, 229~230쪽


초기 외과 연구를 이끈 것은 여성 해부학적 구조의 동일성을 보여 준 변증법이었다. (…) 노예주로서의 존 피터 메타우어는 흑인의 타고난 열등성을 믿었지만, 의사로서의 그는 모든 여성의 방광질루를 고치겠다는 희망으로 노예 여성의 몸을 실험했다. 성의 역사를 연구하는 샌드라 하딩은 인종차별주의와 과학의 수렁에 빠진 이런 난제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성차별, 인종차별, 계급주의는 서로를 구성하고 지탱하며, 이런 일을 한 번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 계속 반복한다. 그들은 고의로, 또 무심코 공조의 유대를 형성한다.”

_「“의학적 초신체”의 역사와 의학적 시선」, 239쪽


나는 약 200년 전 이 나라 초기 부인과 의사들이 흑인 여성에게 했던 일의 수혜자임을 인정한다. 동시에 나는 19세기 흑인 여성들이 부인과 질환과 그들이 느낀 고통에 대해서 짊어졌던 부담, 그들의 침묵과 은폐를 물려받았다. 고통을 통해서 부인과 의학의 탄생을 도왔던 흑인 여성들과 달리, 내게는 흑인 여성들이 여전히 의학적 초신체로서 살고 있음을 드러낼 장이 있다. 다른 미국인들보다 심한 만성 통증을 겪으면서도 통증 완화 약물에 접근하기 어려운 흑인 여성들에 대한 연구에서부터 항상 그들의 의학적 신체를 식민화하려는 노력과 직면해야 했던 흑인 부인과 환자들에 대한 연구에 이르기까지, 나의 난임 시술 경험은 다른 흑인 여성들이 받은 대우를 반영했다.

_「나가며」, 245~246쪽


무엇보다도, 150년이 지나 노예제도가 없어지고 임상실험 윤리도 확립된 현대의 우리가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의사-환자관계에 대한 통찰일 것이다. 의사-환자관계는 고정적이지 않다. (…) 사실 어떤 모델이 절대적으로 옳다, 또는 좋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다. 상황에 따라, 사안에 따라 모델은 바뀌기도 하고, 환자와 의사가 생각하는 건강이라는 목표가 다른 경우 어떤 모델이라도 불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 이 책은 백인 노예주 남성 의사-흑인 노예 여성이라는 능동-수동적 관계가 전통적인 의사-환자 관계의 원형이 된 기원을 보여 줌으로서 의사에게도, 환자에게도 생각할 지점을 준다.

_「추천의 글」, 257~2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