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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 윤규상 옮김
332쪽 | 17,000원
ISBN: 979-11-93482-04-9
2024년 6월 21일 출간
✦ 책 소개
소로가 자연관찰과 내면의 성찰을 평생 결산해온 일기의 ‘영원한 여름편.’ 이 편에서는 산책 마니아이자 아마추어 식물학자인 소로가 돈을 들이지 않고 영감과 즐거움을 얻는 방법, 단순함으로 단단한 삶을 꾸려가는 비결 등을 가르쳐준다. 동시에 어떤 혹독한 겨울 속에도 ‘영원한 여름’이 존재한다는 희망과 치유의 감각이 가득한 한 권이다.
✦ 지은이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avid Thoreau)
1817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서 태어났다. 1833년 하버드 대학에 입학한 그는 모범생이었지만 학점에는 무관심했으며 도서관에서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대학 시절에 만난 시인이자 초월주의 사상가인 에머슨의 제안에 따라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 사색의 결과물은 그의 작품의 자료가 되고 시대를 뛰어넘는 삶의 지혜가 되었다.
1845년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집을 지은 소로는 자연 속에서 최소한의 간소한 생활을 하면서 자족의 즐거움을 맛보았다. 또한 그곳에서 밭을 일구고 자유롭게 여가를 즐겼으며 동식물을 관찰하고 독서와 명상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월든』은 19세기의 가장 중요한 책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에 반대하여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다 수감되었던 경험을 토대로 쓴 『시민 불복종』은 국가권력에 맞서 개인의 자유를 옹호한 책이다. 그 당시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세계의 역사를 바꾼 책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20세기 마하트마 간디의 인도 독립운동 및 마틴 루터 킹의 흑인 민권운동에 영감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1859년에는 노예제도 폐지 운동가 존 브라운을 위해 의회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노예제도 폐지 운동에 헌신하며 활발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펼치다 1862년 콩코드에서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 옮긴이
윤규상
옮긴 책으로 『소로의 일기: 소로의 세계를 여행하는 법』, 『소로의 일기: 자연의 기쁨을 삶에 들이는 법』, 『소로우의 강』, 『헨리 데이빗 소로우』, 『소로우의 일기』 등 30여 권이 있다. 한국외대 영어과를 졸업하고, 현재 소로의 서적들을 우리말로 옮기는 데 애쓰고 있다.
✦ 상세 이미지
✦ 출판사 서평
“단순하게 살고 번거로움을 피하는 것이 단단해지는 비결이다. 특별한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 그것이 내게는 가장 큰 혜택이다. 사람들이 나의 약점으로 여기는 것이 내게는 강점이다.”
_본문에서
평생에 걸쳐 자연관찰과 내면의 성찰을
결산하는 장이 되어온 특별한 일기
불후의 고전 『월든』을 집필한 소로는 한평생 삶과 자연에 대한 깨달음을 일기로 남겼고, 그의 일기는 백 년이 넘도록 살아남아 수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그는 “일기는 좋았던 일이나 그럴듯한 말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경험과 성장을 적는 그릇”이라고 여겼다. 버지니아 울프는 소로가 젊은 시절부터 자신의 마음을 일기에 “결산”해왔으며, “소로의 글을 읽을 때면 우리는 평생 복제본으로만 알던 생각의 원본을 마주하는 충격에 항상 대비해야 한다”는 평을 남겼다.
소로는 20대 때부터 월든 호숫가에 혼자 힘으로 집을 짓고 세상과 떨어져 살 정도로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다. 월든 호숫가를 떠나 마을로 돌아온 후에도 매일의 일상을 관찰하며 단단한 삶을 꾸려가는 법을 일기에 기록했다. 하버드 대학을 나온 지식인이었지만 마을 곳곳에서 푼돈을 받고 허드렛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고, 손수 텃밭에 감자 따위의 먹을 것을 키우고 옷을 지었다. 땔감을 장에서 사는 게 아니라, 숲과 강에서 나무를 주워 땔감으로 썼다. 일을 오락으로 여겨야 한다는 신조를 지녔으며, 남이 깔아놓은 이불에서 잠들기보다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직접 정성껏 돌보는 데서 진정한 충족감과 즐거움을 느꼈다.
○ 사람은 누구나 단순한 삶을 원한다
일기 속 소로의 온갖 자잘한 노동과 소박한 생활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직한 리듬을 만끽하게 된다. 놀랍게도 소로는 어수선하고 복잡한 생활 양식을 권하는 현 사회 시스템은 오직 무딘 사람들만 좋아할 뿐, 사실 다수는 그렇게 사는 것을 내키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사람이라면 더 많은 부, 더 많은 편리함을 소유하길 원하며 그것이 사람의 본성이라는 통념이 만연한 세상에서 이러한 발언은 통쾌함과 해방감을 안겨준다. 소로는 노예처럼 사는 데 지쳤을 뿐 아니라 인간의 진정한 조건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된 우리 내면을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어본 사람이었다.
그에겐 단순하게 살고 번거로움을 피하는 것이 단단해지는 방법이었다. 일기에 “적막함이나 가난함이라 세상에서 부르는 것들이 내게는 단순함일 뿐이다”라고 밝혔고, 자신을 살찌우지도 못하는 값비싼 무언가를 추구하기보다는 평범한 매일의 생활에서 영감과 즐거움을 얻기를 바랐다. 단순함 덕에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이 진정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에 온 힘을 쏟을 수 있었다. 과연 그의 말대로 와인과 브랜디의 맛 때문에 물맛을 잃게 된다면, 우리는 삶이 얼마나 불행해질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산책 마니아이자 아마추어 조류학자, 식물학자의
돈 들이지 않고 영감과 즐거움을 얻는 비결
나는 오늘처럼 조용하고 어둡고 이슬비 내리는 오후에 산책 나가길 좋아한다. 이런 날에 산책이나 여행을 하면 맑은 날보다 생산적인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느낌이다. 안개비로 시야가 좁아지고, 강물이 한없이 부드러워지면서 모든 것이 고요하여 내 안을 살피고 싶어진다.
_본문에서
그의 일기를 읽으면 비가 오건 눈이 오건 숲, 들, 늪지 등을 쏘다니는 산책자 소로의 부지런함과 왕성한 호기심에 감탄하게 된다. 그는 근심 대부분이 우리가 실내에서 살기에 생겨난다면서 ‘실내 생활 반대 운동’을 펼치고 싶다고 적었다. 안개비가 내리는 날에 산책하면 맑은 날보다 시야가 좁아지고 사방이 고요해져서 “생산적인 생각이 꼬리를 물게” 된다고도 읊조린다. 눈과 얼음만이 가득한 추운 겨울 풍경도 그에게는 고쳐야 할 “악”이 아니었다. 수정별처럼 생긴 눈꽃과 가슴 붉은 홍방울새의 지저귐을 즐기며 스케이트를 탔고, 날씨가 온화해지면 활짝 핀 꽃들을 감상하며 무르익은 물과일을 따 모으고 강에서 노를 저으며 사색을 즐겼다. 소로는 실내 생활에 길들여진 정신이 놓치는 활기와 즐거움을 샅샅이 찾아내어 음미할 줄 알았다.
소로는 아마추어 조류학자이자 식물학자로서 일기에 날다람쥐, 여우, 거북, 급류개구리, 원앙, 올빼미, 까마귀, 나무참새, 쌀먹이새, 찌르레기, 느릅나무, 참나무, 걸상독버섯, 앉은부채, 갖가지 나물과 지의류 등 수많은 다채로운 동식물을 등장시킨다. 그는 필드노트를 들고 다니며 자신이 관찰한 온갖 자연을 섬세하게 기록했다. 솔방울과 밤알을 줍고, 낡은 모자를 식물표본상자 삼아 거기에 식물을 담아와 소박한 컬렉션을 만들었다.
소로는 “돈을 들이지 않고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이 가장 큰 부자이다”라고 주장한다. 채도 높고 풍성한 그의 자연관찰 기록에서는 즐거움과 호기심이 퍼져 나와 매번 읽는 이의 마음을 크게 뒤흔든다. 일기 속에 “우리는 버릇대로 걷는 세상길에서 얼마쯤 비켜나 아주 작은 사실이나 현상을 바라보면서 그 아름다움과 의미에 넋을 빼앗길 필요가 있다. 사물을 날카로운 감각으로 새로이 안다는 것은 곧 영감을 얻는 일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자연을 다각도에서 관찰하며 발견의 기쁨을 누리는 소로의 눈을 통해 독자 또한 자연과 일상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는 방법을 체득하게 된다.
어떤 겨울 속에도 “영원한 여름”이 있다
『소로의 일기: 영원한 여름편』은 소로의 글솜씨가 최고조에 올랐지만 건강을 많이 잃고 여러 우정의 위기를 겪은 1855년~1857년 사이에 쓰였다. 어쩌면 그의 인생에서 겨울에 해당하는 시기였다고 추측할 수도 있으나, 소로는 겨울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며 겨울 속에 “영원한 여름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눈과 얼음의 세계에서도 그 세계만이 가진 미와 미덕을 보았다.
일기에 드러난 삶, 돈, 우정, 일 등에 대한 소로의 철학은 매우 현대적이어서 우리는 그가 약 150년 전 인물임을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소로는 사람이 일에 얽매여 기계처럼 변해가는 것을 우려했고, 미니멀한 라이프스타일을 최고로 여겼으며, 성직자 같은 높은 신분의 사람이 아니라 단순하고 소박한 이웃들의 내면에서 부러지지 않는 단단한 심을 보았다. 그리고 물과일을 맛보는 하찮은 일을 하더라도 의도를 갖고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과일을 맛볼 때 삶의 맛 또한 똑같이 음미하게 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소로는 특유의 생활방식 때문에 의도치 않게 마을과 지식인 사회에서 ‘별난’ 사람 취급을 받았다. 그렇지만 그는 일기에 성실한 이웃들이 하루하루 생계를 어떻게 꾸려가는지 애정을 담아 적었고, 사람, 자연, 사회가 어떻게 하나의 유기체로서 살아가는지 관찰한 바를 기록했다. 그는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스스로를 학대하며 산다며 혀를 찼지만, 그들을 외면하기는커녕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하면 내키지 않더라도 거절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따라나섰으며, 우정이 시들어가면 속상함과 슬픔을 솔직하고 가감 없이 토로했다. 소로는 사회와 동떨어져 자신의 아늑한 동굴에만 안전히 머물러 있던 별종이 아니라, 사회의 온갖 어수선한 제도와 기준 속에서 사람들과 이리저리 부대끼며 살아간 별종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소로가 세간의 몰이해와 비웃음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지켜낸 심지 굳은 삶의 방식은 더더욱 빛을 발하며, 오랜 세월을 뛰어넘어 현재까지도 우리에게 큰 감동과 영감을 준다.
✦ 목차
1855년: 일기에 날씨를 적는 건 중요한 일
1856년: 자연에서 만나는 진보와 보수의 공존
1857년: 단순하게 살고 번거로움을 피하자
옮긴이의 말: 단순함으로 더욱 단단해지는 삶
✦ 책 속에서
일기를 쓸 때는 간단하게라도 그날의 날씨를 적어놓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그날 날씨의 특징이 우리 기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때 그렇게 중요했던 일이 내 기억에 하잘것없는 일로 남게 될 리는 만무하다.
-30쪽
며칠 전 야생 생쥐 한 마리를 잡아 단단히 가둬두고 살펴보았다. 수놈이었다. 몸 전체 길이는 16.5센티, 코에서 귀까지 이르는 머리 길이는 2.5센티, 꼬리는 8센티, 가장 긴 수염 길이는 4센티 정도였다. 퍽 귀엽고 단정한 작은 동물로, 온통 적갈색인 옆구리가 하얗디하얀 배로 이어지고, 미심쩍은 작은 소리에도 쫑긋거리는 암청색 커다란 귀는 겁 많고 소심함을 나타내주었다. 발은 희고 아담하며, 꼬리가 길고, 수염이 많이 났다. 이 생쥐는 관목참나무 숲속 봉긋 솟은 마른 땅에서 붙잡혔으니 관목참나무 아래 눈밭 어느 굴에서 나온 게 틀림없다. 약간 이상한 말 같지만, 동물의 왕 사자 나 사슴의 황갈색 또는 적갈색이 이 작은 동물한테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38~39쪽
별안간 비가 억수같이 내려 우리는 서둘러 보트를 클램셸 강가로 끌어올려 뒤집은 다음, 그 밑으로 기어들어가 각자의 노를 깔고 앉았다. 친구들은 우리가 비를 흠뻑 맞으리라 생각했을지 모르나 우리는 그들 못지않게 좋은 지붕 밑에 앉아 있었기에 전혀 젖지 않았다. 물가 가까이에서 30분가량 엎드려 강에 후두두둑 떨어지며 물거품을 일으키는 굵은 빗방울을 바라보면서 빗소리를 듣고 있자니 무척 즐거워졌다. 빗속에서 제비 떼가 연달아 물 위를 낮게 날았고, 두꺼비들의 물보라 같은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86~87쪽
클램셸 언덕 강가에서는 거멀못이 박힌 밤나무 보트 기둥을 주웠는데, 지난겨울에 빙판에 덮여 있던 것이다. 허버드 강가 멱 감던 곳에서는 썩은 적단풍 그루터기를 몇 그루 캐냈다. 이렇게 해서 겨울을 날 땔감을 얼마쯤 얻었다. 나무 장수와 껄끄러운 흥정을 해가며 나무 한 단을 사기보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땔감을 사올 경우 앞뜰에 부려놓은 장작더미를 보면서 잠깐 만족을 느낄 따름이나, 나는 지금 강에서 가져온 나무토막 하나하나를 보면서 특별한 기쁨을 느낀다. 이제 나무를 땔 때마다 이 땔감을 어디서, 어떻게 얻었는지 떠올리게 될 터이다. 땔감 하나하나마다 그것만의 역사가 담겨 있다. 느지막이 집에 도착했다. 채닝과 나는 땔감을 쟁여놓은 뒤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오늘의 일을 이야기했다.
-95쪽
세상 사람들은 내가 왜 남이 깔아놓은 이불에서 잠들기 싫어하는지, 왜 고집을 부리는지 그 까닭을 알지 못한다. 나는 호화롭게 차린 음식상에서 받침 달린 유리잔으로 물을 마시기보다 는 샘에서 맨손으로 뜬 맑은 물을 마시는 것이 더 좋다. 나는 손수 구운 빵, 손수 지은 옷, 손수 지어 올린 오두막, 손수 모은 땔감을 가장 좋아한다.
누군가는 늘 가난하게 살고, 때가 되면 반드시 그런 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 말을 익힌다는 사실이 내게는 변함없는 충고로 여겨진다. 어떤 철학자들은 맨발로 지내 발병에 걸리고 딱딱한 빵밖에 먹지 못했음에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달콤함을 잘 알고 있었다.
-102쪽
오후에 당밀을 넣지 않고 수액을 끓여 설탕을 40그램 만들었다. 숲 남쪽 가장자리에서 자라는 지름 60센티의 사탕단풍에서 뽑아낼 수 있는 평균 설탕량인 듯하다. 콩코드숲 어디에서나 이런 사탕단풍이 자라므로, 누구나 숲 임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누구도 돌보지 않는 단풍나무를 이용해 이렇게 설탕을 얻어낼 수 있다.
설탕을 만들고 나서 아버지와 잠시 말다툼이 있었다. 아버지는 홀든 가게에 가면 더 싸게 사오지 않겠느냐며, 공부하는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것이 내 공부거리이고, 대학이라도 다시 갔다 온 기분이라고 말씀드렸다.
-156쪽
시인, 철학자, 박물학자를 비롯하여 누구든지 가끔씩 자기 전공이 아닌 분야를 들이파는 일, 다시 말해 다른 분야를 곁눈질하는 일의 이점을 떠올려보고자 한다. 이런 곁눈질하기가 일을 그저 내려놓고 쉬는 것보다 나을 때가 많다. 시인은 멍하니 쉴 때보다 이렇게 곁눈질을 하면서 새로운 통찰력을 얻고, 철학자는 오랜 연구로도 찾지 못한 이치를 알아낸다. 박물학자도 예상치 않게 새로운 꽃과 짐승을 만난다.
-166쪽
내게 가장 흥미로운 천장은 동양 사원이나 궁전의 둥근 천장이 아니라 걸상독버섯의 머리 천장이다. 이 습지의 야산에는 이집트 쿠푸 왕의 피라미드나 멕시코 촐룰라 피라미드에 못지않을 만큼 멋진 피라미드가 아담하게 돋아나 아주 미묘한 빛깔로 변해간다. 걸상독버섯이 커지면서 밤색 씨껍질을 터트리고 나면 연한 밤색 꼭대기만 남긴다. 차차 나아짐은 이토록 마음을 홀리는 힘이 있다.
-182~183쪽
나는 추위로 집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겨울을 좋아한다. 집에 갇혀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새로운 방법을 마련하여 색다른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이 꽁꽁 얼어 보트를 띄우지 못해 창고 안으로 들이게 되는 것도 좋다. 봄이 되면 다시 강에 띄울 것이고, 더 큰 기쁨을 맛보게 될 테니 말이다. 또한 바다에서 보트를 타는 일과 견주어 절제와 중용이라는 면에서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바다에서는 늘 보트를 바닷가에 놓아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각 계절이 지니는 특징을 무엇보다 좋아한다. 다른 계절에는 보기 어려운 점들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 그것이 내게는 가장 큰 혜택이다. 가난할수록 부자가 된다는 사실을 나는 진리로서 굳게 믿는다. 사람들이 나의 약점으로 여기는 것이 내게는 강점이다. 사람들은 갖가지 방식으로 지식과 문화를 누리며 즐거워하지만, 나는 그런 지식과 문화에서 멀어졌을 때 오히려 더 즐겁다.
-211쪽
우리는 날마다 야외로 나가 자연과 맺어져야 한다. 겨울에도 매일매일 잔뿌리를 얼마씩이라도 내뻗어야 한다. 나는 입을 벌리고 바람을 맞으며 건강을 들이마신다. 집에 머물러 있으면 가벼운 정신이상 같은 증세가 생긴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집은 일종의 정신 병원이다. 이런 병동에 갇혔더라도 하룻밤과 이튿날 오전까지는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 그러나 밖으로 나오는 순간 거의 잃어버렸던 정신을 얼마간 되찾았음을 깨닫는다.
-221쪽
추위에 증기와 물이 얼어붙듯이 단순하게 살고 번거로움을 피하는 것이 단단해지는 비결이다. 가난은 힘과 기운과 흥을 끌어온다. 순결은 천지만물의 영원한 벗이다. 흩어진 안개 같았던 내 삶이 잡풀, 그루터기, 활엽과 침엽 위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겨울 아침의 서리가 되었다. 은둔 생활이 나를 가난하게 만들었다고들 여기지만 나는 고독 속에서 비단결같이 보드라운 막으로 번데기를 만들고 있다. 그리하여 오래지 않아 애벌레처럼 더 높은 사회에 알맞은 더 완전한 피조물로 활짝 피어날 것이다. 전에는 어수선하고 아둔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가난이라 부르는 단순함 덕에 마음을 가다듬고 값어치 있는 일에 온 힘을 쏟는 삶을 살 수 있었다.
-237쪽
가령 어떤 사건이나 사람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면 각기 다른 시간을 정해 아주 다른 글을 두 편 이상 써보라. 오늘 모든 일을 샅샅이 적었다 느낄지라도 내일이 되면 유달리 흥미를 끌었으나 글에 적지 않은 전혀 새로운 사실이 기억날지도 모른다. 최근 어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경험을 적는다면, 대체로 처음에는 마음에 새겨진 흥미롭고 중요한 점들을 잡아내지 못한 채 아주 치우치게 서술하기 십상이다. 즉, 당시 마음에 떠오른 생각만으로 마무리 짓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쯤 시간이 지나면 마음을 사로잡은 새롭고 흥미로운 사실들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여하튼 자신에 게 일어나는 일 중에서 우리가 즉시 바르게 분별할 채비를 갖추고 있는 일들은 얼마나 적은가! 대개 처음에는 그저 몇몇 사실만을 알아차리므로, 그로 인해 생긴 결과를 온전히 알기 위해서는 여러 관점과 마음가짐으로 당시 경험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245~246쪽
한 달 전쯤 우체국에 갔을 때 약간 귀가 먼 에이블 브룩스 씨가 다가와서는 우체국 안이 쩌렁쩌렁 울릴 만큼 큰 소리로 말했다.
“이봐, 자네 모임은 꽤 큰 모임이지, 안 그래?”
나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채로 “그렇겠지요, 뭐” 하고 얼버무렸다.
“스튜어트도 거기 꼈지. 콜리어도 그중 하나이고, 에머슨 그리고 우리 집에서 하숙하는 풀시퍼도 있고 말이야. 내 생각으로는 채닝도 거기 나가는 것 같은데.”
“아, 산책 좋아하는 사람들 말이군요.”
“그래, 자네들도 단체 아닌가? 모두 숲에 가지, 안 그래?”
“아니, 아저씨네 숲에 무슨 문제라도?” 하고 내가 되물었다.
“뭐, 그런 걱정은 별로 하지 않아. 자네 패거리가 그런대로 영리한 축이라고 믿으니까” 등등.
샌번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그가 처음 콩코드 마을에 와서 브룩스 씨 집에 하숙을 정했을 때 마을에 어떤 종파가 있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브룩스 씨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단다.
“셋 있어. 유니테리언파와 정통파, 그리고 월든 호수파. ”
-251쪽
나는 삶의 열매를 남김없이 따려고 가장 정직한 삶의 기술을 차례차례 실험해보고 싶었고, 또 실제로 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직한 삶의 기술이라 하더라도 절제하지 않는다면, 즉 필요한 양 이상으로 곡식을 거둬들이기 위해 땀을 흘린다면 아주 많은 양의 밀을 추수하더라도 적은 양의 왕겨를 추수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일단 우리가 정직히 생계를 꾸려갈 수만 있다면 그다음에는 다른 오락을 생각해낼 시간도 갖게 되리라.
-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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