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이의 축제
Evolution‘s Rainbow (2003년)
: 다양성이 이끌어온 우리의 무지갯빛 진화에 관하여
사회과학 > 젠더
조 러프가든 지음 | 노태복 옮김
35,000원 | 684쪽
ISBN : 979-11-87038-76-4
2021년 7월 20일 출간
✦ 책 소개
무엇이 남성이고 무엇이 여성일까? 동성애와 젠더 트랜지션은 정말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것일까? 다윈에 의해 폄하된 성적 다양성을 복원하는 새로운 고전. 평균이 되기보다 ‘나’로 살기를 요청하는 자연의 본성에 관하여.
이 책은 ‘수줍은 암컷’과 ‘매력적이고 문란한 수컷’을 완벽한 짝으로 상정하는 성별 이분법적 해석으로 진화를 설명한 다윈 성선택 이론의 오류를 지적하며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가 ‘(종의 생존을 위협하는) 나쁜 돌연변이’가 아닌, 오히려 진화를 이끄는 하나의 축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종은 변화하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다양한 유전자 풀을 유지하려 한다는 것, 즉 다양성은 곧 그 종이 가진 유전적 자산이라는 것을 이 책은 상세하고 힘 있게 증명한다.
총 3부의 구성에서 저자는 동물의 사례를 소개하며 인간의 렌즈 밖에서 성과 섹슈얼리티의 다양성이 얼마나 일상적인지를 밝히고(1부 ‘동물의 무지개’), 인간의 발생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성·섹슈얼리티·젠더 다양성을 짚으며 이를 정상성이라는 인위적 틀로 구분함으로써 많은 사람을 환자로 만드는 생물학과 의학이 어떻게 인권을 부정하고 인간 유전자 풀의 온전성을 손상시키는지를 보인다(2부 ‘인간의 무지개’). 또한 인류사의 시대와 장소에 따라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들이 어떻게 박해받고 존중받았는지, 성 소수자를 부정한다는 오랜 편견과는 달리 성경이 젠더와 섹슈얼리티 다양성을 어떻게 포용하는지를 분석한다(3부 ‘문화의 무지개). 『변이의 축제: 다양성이 이끌어온 우리의 무지갯빛 진화에 관하여』는 한국에서 2010년 출간 후 절판된 『진화의 무지개: 자연과 인간의 다양성, 젠더와 섹슈얼리티』(원서는 2003년 출간)의 10주년 개정판으로, 번역을 다듬고 저자의 개정판 서문과 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 한채윤의 추천사를 새로 실었다.
✦ 추천의 글
저자는 다윈의 성선택 이론에 의해 지워진 존재까지 포함해 동물과 인간 전체를 자연의 진화 과정 내에서 설명하고자 했다. 편견을 갖지 않으려 애쓰며 방대한 자료를 꼼꼼히 봐야 하는 힘든 작업이다.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성별 이분법에 갇힌 이성애 중심적인 이론만
접했는지 떠올린다면, 50대에 접어들어 드디어 스스로를 긍정하고 트랜스젠더로 살기를 결심한 이 용감한 생물학자가 세상에 하고픈 말이 얼마나 많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_한채윤, 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
자연계의 성과 젠더 다양성에 관한 정보의 개론서로서 이 책은 가장 풍부하고 권위 있는 책이다.
_《네이처》
혁신적이고 심오하며 예리한 지성의 파괴력을 강력한 확신과 윤리적 용기와 결합시킨 책이다.
_《아메리칸 사이언티스트》
훌륭하면서도 읽기 쉬운 이 생물학적 비평서는 자연계의 젠더와 섹슈얼리티 개념을 이해하는 방식에 혁명을 일으킬 잠재력을 지녔다.
_《퍼블리셔스 위클리》
✦ 지은이
조앤 러프가든 (Roughgarden, Joan)
스탠포드 대학의 생물학 명예교수이자 트랜스젠더 여성이다. 『진화와 기독교 신앙: 진화생물학자의 성찰』, 『상냥한 유전자: 다윈주의적 이기심을 해체하며』를 포함하여 여러 권의 책을 썼다.
✦ 옮긴이
노태복
환경과 생명 운동 관련 시민단체에서 해외 교류 업무를 맡던 중 번역가의 길로 들어섰다. 과학과 인문의 경계에서 즐겁게 노니는 책들 그리고 생태적 감수성을 일깨우는 책들에 관심이 많다. 옮긴 책으로 『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 『수학의 쓸모』 등이 있다. 저글링을 하면서 즐겁게 살고 있다.
✦ 출판사 서평
평생 성을 바꿔가며 사는 망둥이, 음경을 가진 암컷 하이에나,
동성 짝짓기를 통해 생존을 보장받는 암컷 보노보…
성선택 이론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동물의 동성애·트랜스젠더 표현
일반적으로 진화는 생산성 높은 개체들이 생존하는 경향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생식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는 진화를 방해하는 해로운 돌연변이들인 걸까? 그렇다면 왜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았을까?
저자는 자연을 우월한 개체와 뒤처지는 개체들의 위계 속 피 튀기는 경쟁과 다툼의 현장으로 묘사한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 특히 모든 개체의 목표를 번식으로 해석하며 동물의 사회적 삶을 ‘신중하고 수줍은 암컷’들의 선택을 받기 위한 ‘강하고 열정적인 수컷’들의 전쟁으로 묘사한 성선택 이론의 오류를 지적하며 논의를 연다. 그에 따르면 자연은 우리의 인식보다 훨씬 평화롭고 사회성이 발달되어 있으며 모든 개체가 번식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유성생식 종은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저자의 관점에서 ‘경쟁’과 ‘위계’로 개체를 줄 세우는 자연선택·성선택 이론은 그 자체로 모순을 드러낸다.
1부 ‘동물의 무지개’에서는 어류와 조류, 파충류와 양서류, 포유류를 망라한 동물의 사례를 풍부히 소개하며 인간의 렌즈 밖에서 성과 섹슈얼리티의 다양성이 얼마나 흔하고 일상적인지를 밝힌다. 평생 성을 바꿔가며 사는 망둥이, 일곱 가지 젠더를 가진 돼지, 새끼를 낳는 수컷 불곰, 음경을 가진 암컷 하이에나, 동성 짝짓기를 통해서 생존을 보장받는 암컷 보노보, 최상의 유전자를 지닌 수컷보다는 집안일에 협조적인 수컷을 선호하는 흰목참새, 옆줄무늬도마뱀, 모래망둥이, 공작놀래기… 암컷들, 이웃 둥지에 알을 낳는 삼색제비 암컷과 이를 용인하는 이웃 삼색제비 수컷, 동성 파트너와 백년해로하는 회색기러기 등의 넘쳐나는 사례는 성별 이분법적·이성애 중심주의적인 성선택 이론의 틀로는 진화를 설명할 수 없음을, 동성애와 젠더 트랜지션을 배제한 “자연의 질서”는 상상하기 어려움을 깨닫게 한다.
한 쌍의 암수 관계만을 ‘정상’으로 간주하는 시선에서는 이웃 둥지에 알을 낳는 행위, 으뜸 수컷과 버금 수컷이 한 마리의 암컷과 함께 사는 모습, 마초성이 없는 수컷, 산란기에 특정 수컷 개체들이 암컷과 유사한 외모를 띠는 모습 등이 “절도”, “기생”, “사기”, “흉내”와 같은 단어들로 묘사된다. 경쟁과 위계의 언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모습을 협력과 협상의 언어로 해석할 때 더 분명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으며 이들이 실제로 얻는 번식상의 이익 또한 관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식민지 전쟁이 미화되고 정숙한 아내에게 소극적인 성 역할이 부여되던 시기에 탄생한 이론(다윈의 성선택 이론)의 틀로는 자연과 인간의 본성을 결코 정확히 포착할 수 없음을 강조하며 저자는 과학자들이 동물들의 정직함과 협력, 정교한 상호관계에 주목한 전문적인 연구를 책임감 있게 수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이 남성이고 무엇이 여성일까?
젠더 트랜지션은 정말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것일까?
단일 존재이기보다 조율 과정인 우리 몸의 성·젠더 결정 요소들
2부 ‘인간의 무지개’에서는 왜 어떤 이는 동성애자나 이성애자가, 또 어떤 이는 트랜스젠더나 시스젠더(타고난 생물학적 성과 젠더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가 되는 것인지, 오랜 믿음처럼 동성애 유전자 같은 것이 정말 존재하는지에 대하여 인간의 유전자와 호르몬, 뇌를 각각 살피며 알아본다. 성과 젠더를 결정하는 것은 유전자나 호르몬 등의 단일 요소가 아니라 몸 내?외부의 협상의 과정이자 결과라는 것,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트랜스젠더와 시스젠더의 차이는 임의의 두 사람이 보이는 차이보다 더 유의미하게 다뤄져야 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 2부에서 줄곧 이야기되는 내용이다. 이를테면 테스토스테론은 존재만으로 홀로 작동하지 않으며 수용체가 있어야 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 트랜스젠더 남성이 테스토스테론 호르몬 주입을 통해 심리적 안정감과 화학적 균형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아마도 호르몬 수용체에서 비롯된 차이일 수 있음을 보이는 부분에서 우리는 성별이란 특정한 유전자나 성호르몬의 존재 여부로 명확히 판가름되는 것이 아니라 몸속 여러 요소들의 요구와 능력, 협상에 따라 조율되는 것임을, 이러한 세계에서 ‘정상적인 사람’이란 저자의 표현대로 “눈꽃 송이처럼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어 저자는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를 환자로 간주하고 동성애와 트랜스젠더 표현을 병리화하는 관행이 얼마나 비과학적인 것인지를 함께 논한다. 그리고 지금과 같이 의학이 ‘정상’에 대한 엄밀한 과학적 정의를 마련하는 대신 사회적 가치가 과학을 위장해 의학에 반영되도록 내버려둔다면 한때 “단지 여자인 것이 질병 상황에 해당되었”듯(452p) 존재 자체를 질병으로 다루는 심각한 오류를 반복할 수밖에 없음을 경고한다.
평화의 상징인 ‘두 개의 영혼’, 성 소수자를 탄압하지 않는 성경…
고대부터 지금까지, 다양성의 손익을 모두 기록해온 인간의 진화사
3부 ‘문화의 무지개’에서 이 책은 생물학을 넘어 인류학, 사회학, 신학 문헌들을 통해 인류사 안에서 젠더?섹슈얼리티 다양성을 탐구한다. 성 정체성이 다른 사람들을 ‘두 개의 영혼’이라는 이름으로 이해하고 부족사회 차원에서 존중한 아메리카 원주민의 사례, 동성 섹슈얼리티를 자연스럽고 합당한 것으로 받아들인 고대 그리스의 사례 등을 통해 우리는 인간 진화사의 특정한 부분에서 성 소수자들이 진화상의 이익을 경험했음을 짐작하게 된다.
이외에도 트랜스젠더에 관한 서구적 개념이 도입되자 문화적 갈등을 겪게 된 폴리네시아의 ‘마후’, 100만 명이 넘는 인도의 대규모 트랜스젠더 계층인 히즈라, 로마제국의 ‘히즈라’였던 키벨레 여사제들, 멕시코시티의 베스티다(트랜스젠더)와 도미니카 공화국의 구에베도체(간성), 트랜스젠더 남성인 잔 다르크, 이성의 복장을 하기 좋아했던 중세의 성인들, ‘고자’로 분류되던 고대의 트랜스젠더들,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종교의 이름으로 성적 다양성을 박해하는 것을 결코 지지하지 않았던 성경과 이를 둘러싼 오해에 관해서도 상세히 알아본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트랜스젠더,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간성인 사회의 연대 가능성을 살피며 생물학자이자 트랜스젠더 당사자로서 이들에게 도움이 될 저자의 실질적인 정책 권고를 끝으로 내용이 마무리된다.
3부에서 저자는 인류사 속 여러 문화와 시대에 걸쳐 변이의 정도는 동일하게 나타나지만, 사람들을 사회적 범주로 묶어온 방법들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는 것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성·섹슈얼리티·젠더를 둘러싸고 우리의 몸뿐 아니라(1, 2부), 제도와 규범 역시 늘 생동하며 협상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 “제도와 범주를 바꾸면 우리 종의 본질은 우리 사회 내부에서 지금도 작동하고 있는 자연선택의 새로운 힘에 반응해 서서히 바뀐다”(p.587)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 몸의 생화학적 판단과 상호작용하며 우리의 시선과 마음 또한 진화의 역사에 기록되고 있는 셈이다.
트랜스젠더 진화생물학자가 다시 쓴
아무도 배제하지 않는 진화론
“우리는 존재하지 말아야 할 존재이며 우리의 실체는 과학, 종교 그리고 관습에 의해 부정된다. 이론적으로 우리는 문젯거리다. 하지만 우리는 존재한다.”
_본문에서
1997년 6월 샌프란시스코, 대규모 퀴어 퍼레이드 행렬을 보며 저자는 생각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더러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과학 이론이 있다면, 그 사람들이 잘못되었다기보다는 아마 그 이론이 틀렸으리라.”(20p) 이 책은 50대에 접어들어 비로소 용기를 내어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정체화한 진화생물학자가 자신의 존재를 지울 리 없는 과학의 언어를 정교하게 탐구한 흔적이다.
“조앤 러프가든은 다윈의 성선택 이론에 의해 지워진 존재까지를 포함해서 동물과 인간 전체를 자연의 진화 과정 내에서 설명하고자 했다. 방대한 자료를 아주 꼼꼼하게 보고, 편견을 갖지 않으려 스스로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하는 힘든 작업이다.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성별 이분법에 갇힌 이성애 중심적인 글만 읽었는지를 떠올린다면, 50대에 접어들어 드디어 스스로를 긍정하고 트랜스젠더로서 살기를 결심한 이 용감한 생물학자가 세상에 하고픈 말이 얼마나 많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_한채윤
편견과는 달리, 자연은 정상과 표준을 지지하기보다는 각 개체가 ‘나’로 살기를 응원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이 내내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무엇이 남성이고 무엇이 여성인지”, “젠더 트랜지션은 정말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것인지” 등의 오래 반복된 질문에 이 책이 좋은 답변이 되어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목차
추천의 말: 나도 모르게 갇힌, 그 좁은 틀에서 탈주하는 즐거움
2013년판 서문
2009년판 서문
들어가며: 거부된 다양성
1부 동물의 무지개
1장 성과 다양성
2장 성 대 젠더
3장 몸 안의 성
4장 성 역할
5장 두 가지 젠더로 구성된 가족
6장 다양한 젠더로 구성된 가족
7장 암컷선택
8장 동성 섹슈얼리티
9장 진화론
2부 인간의 무지개
10장 배아에 관한 이야기
11장 성 결정
12장 성 차이
13장 젠더 정체성
14장 성적 지향
15장 심리학적 관점
16장 질병 대 다양성
17장 유전공학 대 다양성
3부 문화의 무지개
18장 두 개의 영혼, 마후, 히즈라
19장 유럽·중동 역사상의 트랜스젠더
20장 고대의 성관계
21장 톰보이, 베스티다, 구에베도체
22장 미국의 트랜스젠더 정책
부록: 정책 권고
주석
찾아보기
✦ 책 속에서
많은 진화생물학자는 무지개에 대해 긍정적이다. 이들에게 무지개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있는 유전자들의 저장고다. 다시 말해, 변화하는 조건에서도 종의 생존을 보장받기 위한 수단이다. 무지개는 어떤 종이 가진 유전적 자산을 드러낸다. 이 견해로는, 무지개란 결정적으로 좋은 것이다. 또한 이 견해는 늘 바뀌는 환경조건에 반응하는 종의 능력을 낙관적으로 본다.
_「1장 성과 다양성」, 39쪽
다윈주의자들은 다양성의 가치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대부분의 변이가 자연선택에 필요하기에 좋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마치 대부분의 유전자가 좋고 나쁨 사이에 등급을 매길 수 있다는 가정 아래 암컷이 끊임없이 최상의 유전자를 지닌 수컷을 찾아다녀야 한다고 주장한다.
_「1장 성과 다양성」, 49쪽
동물은 전투 로봇이 아니다. 작동을 시켜놓으면 거짓말, 속임수, 도둑질, 싸움만 하는 로봇이 아니라는 말이다. 내가 알기에 생물학은 동물들 사이의 정교한 관계, 다시 말해 속임수와 경쟁보다는 정직함과 협력으로 맺어진 관계를 밝히는 학문이다.
_「6장 다양한 젠더로 구성된 가족」, 163쪽
결과는 놀라웠다. 보금자리 차지하기 경쟁에서 이겼다고 해서 알을 잘 보호하는 아비인 것은 아니었다. 또한 암컷의 선호는 수컷끼리 경쟁에서의 우위와 상관관계가 없었다. 암컷은 자신이 좋아한 수컷이 다른 수컷과의 싸움에서 이기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암컷의 관심은 수컷이 알을 보호하느냐 여부였다. 어떤 식으로든 암컷은 누가 좋은 아비이고 안 좋은 아비인지를 예측할 수 있었으며, 이후에 알을 잘 보호한다고 밝혀진 수컷과의 짝짓기를 분명 더 좋아했다. 어찌된 셈인지 암컷은 수컷을 척 보기만 해도 새끼를 잘 돌볼 아비인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_「7장 암컷 선택」, 173~174쪽
암컷의 번식 선택에 관한 또 하나의 측면으로서 짝짓기 파트너의 수와 정체를 꼽을 수 있다. 암컷의 파트너 선택은 생물학이 심각하게 편향된 언어를 보여주는 또 다른 한 분야다. 지금까지의 연구에서는 암컷이 하나의 파트너와 짝을 맺길 좋아하면 ‘충실한’ 암컷으로, 여러 파트너와 짝을 맺길 좋아하면 ‘문란한’ 암컷으로 묘사한다. 아비가 여럿인 한 배의 알들은 ‘합법적인’ 새끼와 ‘불법적인’ 새끼를 함께 포함하고 있다고 보며, 아비가 여럿인 알들을 돌보는 수컷은 ‘바람난 아내를 두었다’고 본다. 이처럼 인간의 윤리적 잣대를 덧씌우는 바람에 진실이 흐려진다.
_「7장 암컷 선택」, 190쪽
교미의 유일한 목적으로 정자 전달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온갖 문제점이 줄줄이 뒤따른다. 만약 수컷이 정말로 ‘바람난 아내를 두었다면’, 충실하지 못한 짝을 버려야만 한다. 그런데 수컷 큰부리바다오리는 짝을 버리지도 않고 짝이 짝외교미를 받아들여도 공격하지 않는다. 수컷 큰부리바다오리는 짝의 문란한 정도에 맞추어 부모로서 자신의 새끼 돌보기를 줄이지도 않는다. 왜 그러지 않을까?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어서일까? 수컷이 투덜거리면서도 참고 살 수밖에 없기에 암컷들이 책임을 면할까? 그런 관점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짝짓기가 정자 전달만큼이나 관계 맺기를 위한 용도로 치러진다고 제안한다.
_「7장, 암컷 선택」, 192쪽
회색기러기는 수명이 20년인데, 그중 10년 이상 암수가 쌍을 이루어 산다. 동성애 회색기러기 간의 결혼도 일정 부분을 차지한다. 15퍼센트의 쌍이 수컷끼리 맺어진 관계인데, 어떤 쌍은 무려 15년 이상 함께 지낸다는 기록이 있다. 수컷은 동성 파트너가 죽으면 ‘슬픔’을 보이며 낙담하고 무기력해지는데, 이성 파트너가 죽었을 때 보이는 행동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한다. 회색기러기는 때때로 검은머리물떼새와는 정반대의 3자 관계, 즉 수컷 한 쌍이 하나의 암컷에 붙어 있고, 이 세 마리가 함께 가족을 키우는 형태를 이룬다.
_「8장 동성 섹슈얼리티」, 213쪽
왜 동성애가 암컷 보노보 사이에 진화되었을까? 암컷들은 친척 관계가 없는 다른 암컷과도 돈독한 우정을 지속하며, 먹이에 대한 접근을 통제하고 수컷보다 암컷끼리 서로 먹이를 나누어 먹으며, 동맹을 맺어 수컷에게 협공을 펼치거나 심지어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먹이를 더 잘 통제하고 수컷의 위협이 적기 때문에 암컷 보노보는 그러한 우정을 맺지 않는 암컷 침팬지보다 더 이른 나이에 번식을 시작한다. 번식을 처음 시작하는 나이가 어리니 평생 번식에 더 많이 성공한다. 동성 섹슈얼리티를 비롯한 이러한 사회 체제에 속하지 않은 암컷은 무리의 혜택을 공유하지 못한다. 암컷 보노보는 레즈비언이 아니면 생존이 위태롭다.
_「8장, 동성 섹슈얼리티」, 233~234쪽
한편, 번식을 하는 동성애 성향 동물들은 번식을 하는 이성애 성향의 동물들보다 번식률이 훨씬 더 높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동성애로 우정을 맺은 동물들은 이성애만을 행하는 동물들보다 더 많은 자원을 얻을 수 있어서 번식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성애는 사회통합형 특성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동성애는 번식과 생존을 둘 다 증가시키고, 심지어 번식과 생존 사이의 균형 맞추기를 고려하지 않고서도 자연선택이 선호하는 행동이 될지 모른다. 따라서 동성 섹슈얼리티는 일반적으로든 개별적으로든 꼭 진화와 모순되지는 않는다.
_「8장 동성 섹슈얼리티」, 243쪽
짝짓기의 주목적은 정자 전달이 아니다. 이성애든 동성애든 짝짓기의 목적은 정자 전달보다는 관계를 맺고 이어가는 측면이 더 크다. 성선택 이론에서는 짝짓기가 주로 정자 전달을 위한 것이어야 하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짝짓기의 양은 수태만을 위해 필요한 양보다 100~1000배 더 많다.
_「9장 진화론」, 263쪽